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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26. 2017

밀란 가는 길(9/20)

1층은 웃음이 넘치지만 2층은 아쉬움으로 가득찬 곳이 공항이다. 만남과 이별이 한 건물의 아래 위층에서 이뤄지는 곳, 그래서 나는 공항에만 가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이별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마음 한 구석을 휑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별은 짧고 간결해야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미련없이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한다. 그렇지만 약간의 너스레조차 없이 헤어지는 것은 너무 차갑고 살벌하다. 전시장에서 나는 공항으로, 그들은 파리 시내로 그렇게 우리의 파리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RER B 역은 전시장에 바로 붙어있다. 플랫폼에는 전시에 왔다 돌아가는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아직 전시가 끝난 것은 아니니 아마도 참관차 온 사람들이리라. 나처럼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것을 보면. 공항은 바로 다음 정거장이다. 이번에는 실수할 틈이 없다. 터미날 1에 먼저 정차하고 다음이 터미날 2. 내가 가야할 곳이다. 이지젯(EasyJet)은 유럽에 특화되어 있는 저가항공사인 것 같다. 파리에서 밀란까지 159유로이다. 가방 첵인과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카운터를 찾는데 기차역에서 내려 한참을 가야하는 거리이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서두를 것은 없지만 큰 가방을 끌고 가는 것이 조금 고달프다. 짐값이 47유로란다. 이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무려 비행기값의 1/3을 짐값으로 내야 하다니.. 100유로를 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형편이기는 하지만 저가라는 게 실상은 저가가 아니다.  


시큐리티첵은 미국이나 프랑스나 비슷하게 엄격하다. 바로앞의 미국 여권 소지자는 뭐라 궁시렁 궁시렁한다. 드골공항의 시큐리티 첵 프로세스는 미국 공항의 그것보다 더 인간적이다. 제복을 보면 누구나 긴장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공항의 보안점검 프로세스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제복이 뭐라고 간단한 질문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드골 공항의 안전요원들은 사람의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점에서 미국 공항의 안전요원들보다 한수 위다. 몰라서 실수하는 것을 그들은 최대한 잘 도와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발을 벗지 않고 통과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또 신을 벗는다. 내 앞의 미스터 어메리칸은 당당하게 신발을 신고 통과하다가 요원의 지적을 받고는 또 궁시렁 궁시렁. 나는 얼른 벗어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았다.


맨하탄이 가슴을 두 주먹으로 쾅쾅치며 날뛰는 킹콩같다면 파리는 그 킹콩이 사랑한 미녀같다. 몽마르트 언덕에만 올라가도 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시 조경. 그 와중에 솟아있는 에펠탑은 여기가 파리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몽마르트가는 길의 식당들은 한결같이 의자를 길 방향으로 배치하여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게 한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또 의자에 앉은 그들을 보며 서로 눈인사. 서로가 서로에게 관광상품이 되게하는 이 독특한 광경, 이것도 플랫폼 비즈니스라고 해야할 것인가.


보딩패스에 게이트 정보가 없다. 저가항공이라 그런가? 이정도도 계획이 안되나... 안내 전광판을 확인하는 수 밖에. 아직도 시차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는 1시간 반의 비행시간동안 절대로 잠을 자지 않을 생각이다. 알프스를 넘어가는 순간에 잠을 자다니,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밀란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은 조금 들떠 있다. 시저의 고향, 로마가 있는 나라. 나는 거기에서 서로 소식이 끊긴 지 30년된 후배를 만날 예정이며, 4반세기동안 얼굴을 보지못한 친구를 만날 예정이다. 이런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비행기에 올랐으니 잠이 올리가 있겠나.


737은 날렵하게 이륙하더니 곧장 방향을 잡는다. 기내방송이 나온다. 
" '밀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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