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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24. 2017

20년만에 파리로 (9/16)

팔팔하던 30대 초반, 컴퓨터 부품을 팔아보겠다고 가방하나 끌고 드골 공항을 왔다갔다하던 때가 20여년전. 그때는 파리를 구경할 겨를도 정신도 없었다. 내가 찾아가야하 곳은 파리가 아니라 다시 차로 3시간여 운전해야만 하는 Angers라는 도시. 공항에서 차를 렌트한 후 오로지 지도에만 의존하여 찾아가야만 했다. 궁즉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도만 보고 찾아다녀도 길을 잃어서 헤멨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남자들은 길을 헤멜지언정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아예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의 본능이다. 그러니 길 물어보지 않고 지도에 메달려 끙끙거린다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다. 그때 이후 유럽은 나에게 잊혀진 대륙이었다.


다시 파리로 간다. 총기사고의 천국, 미국을 염려하는 친구들에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툭하면 테러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프랑스와 영국의 뉴스에 스스로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려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의 기분이 없지 않았다. 호텔과 비행기는 내가 인터넷으로 직접 예약했다. 이런 저런 옵션을 조합하고, 목적지의 위치를 고려하면서 한편 대중교통도 이용가능한 곳으로.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니 여행사가 점점 힘들어질 수 밖에. 1994년 연수차 미국을 체류중일때 AAA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여행 플랜을 만들어 집으로 보내준 패키지를 보면서 얼마나 감탄했던가. 이제 그런 것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여행에 맛집이 빠질 수 없다. 물론 이런 정보도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럴때 소중한 것이 바로 인연의 힘. 파리에 살고 있는 페친님께 손님 모시고 접대할만한 식당 추천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3곳을 추천해 주신다. 주소를 잘 정리하여 출장 준비물에 넣었다.


이자리를 빌어 귀중한 정보를 주신 파리의 Jiwon Park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추천해 주신 세곳 중 두곳을 다녀왔고, 특히 양고기 전문점은 모시고 간 손님들도 아주 흡족해 하셔서 더불어 박선생님 자랑도 좀 했습니다.


20여년만에 방문한드골 공항 1터미날의 중앙분산식 시스템은 여전히 신기했다. 그때는 911 전이었음에도 너무나 혼잡했던 기억만 선명하다. 2 터미널이 없던 시절이니 아마도 거의 수용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았었나 짐작한다. 어느나라나 대중교통 시스템의 기본은 거의 비슷하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전철이나 기차는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버스는 매우 노선이 복잡하므로 함부로 시도하는 것은 다소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안내소에 가서 물어보니 파리로 가는 기차는 RER B 밖에 없단다. 다행이다. 갈아타고 할 것도 없이 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내리면 될 일이다.


표를 산 후 알려주는 플랫폼으로 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나는 Le Bourget 역에 내려야 한다. 지도상으로 짐작컨데 거기서 걸어가면 호텔까지는 대략 3,40분이면 될 거리였다. 요즘 전철이나 기차는 노선 안내가 매우 잘 되어 있다. 불빛이 점멸하는 역이 다음 정차역이다. 타자마자 이것을 확인하니 이상하게 Le Bourget 역은 불이 꺼져 있다. 음.... something wrong... 잠깐 생각을 가다듬은 후 내린 결론, 시내까지 바로가는 익스프레스. 뭐 초행에 이정도 실수야.. 이제 회복에 집중해야할 때다. Gare de Node에 내려 반대방향 플랫폼으로 가되, 완행을 타야만 한다. 조금 더 정신을 차려야지.


열심히 전광판을 연구한 다음 이번에는 RER B완행을 타는데 성공했다. 하나의 장벽을 넘은 것이다.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몇번째 내리면 되나를 가늠해본다. Le Bourget 역은 우리의 마치 시골 간이역 같다. 조그맣지만 복잡하다. 지금 이렇게 붐비는 것도 아마 전시회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역에는 안내요원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여기 저기서 열심히 안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그 중 아무나 붙잡고 내 호텔 주소를 들이밀면서 어느방향으로 가면 되는지를 물었다. 자기는 영어가 안되니 옆에 있는 친구에게 믈어보란다.


주소를 한참 보더니 두정거장을 더 가서 그 역에 내려 다시 믈어보라고 한다. 초행길인 나의 지식과 현지 안내원의 정보가 충돌할 때는 겸손한 선택이 최선이다. 더구나 나는 지금 이민가방급을 끌고 다니지 않나 말이다. 냉큼 다시 표를 샀다. 주말 힌낮이라 그런지 기차안은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교외지역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알려준 두번째 역에 내려 빨간조끼를 찾았다. 믿을 수 있는 안내원임을 이미 확인했으니 망설일 것이 없다. 그가 핸폰을 꺼내 지도 검색을 하더니 길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152번 버스 제일 마지막에 내리면 그 바로 앞에 호텔이 있다고 알려준다. 쉽군.


'초행길인 나의 지식과 현지 안내원의 정보가 충돌할 때는 겸손한 선택이 최선이다.' 나는 이 말을 좀 더 새겼어야 했다. 내 생고생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핑계가 없지는 않다. 두 정거장을 왔으니 호텔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라는 나만의 막연한 짐작( 실제로는 호텔에서 더 멀어진 줄도 모르고), 버스를 타려니 주머니에 유로도 없고( 환차손 좀 아끼려고 카드로 버티려는 잔머리를... 카드 수수료가 더 비쌀 수도 있는데 순전히 내 게으름과 오만의 결과. 수구수원하리요.), 나름 여행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택시를 탈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그 큰 가방을 끌고 걸었다! 로밍폰도 없이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모르고...


두시간을 파리교외 이름도 모르는 동네 뒷골목에서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아 비는 또 왜 하필 이럴 때 내리는지, 결국 택시를 타고 호텔에 무사히 첵인 했다. 20년만에 다시찾은 파리는 걷기와 땀 범벅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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