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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an 19. 2017

재클린 케네디가 지켜낸 그랜드센트럴 터미널

맨하탄은 만인의 연인이다.전세계에서 매년 수천만명이 피땀흘려 모은 돈을 기꺼이 쓰고 가는 도시. 상상하는 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신사적이지도 않다.그러니 혹여 맨하탄이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상처받지 말라. 앤디 워홀,빌리 조엘,아서 밀러와 함께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흥분되지 않는가.  뉴요커의 걸음걸이는 비바체다.  바쁨의 도시 뉴욕은 그래서 24시간도 짧다.  그 중 가장 바쁜 곳이 맨하탄과 다른 지역을 이어주는 터미널. 매일 수십만명의 인파가 이곳을 통해 출퇴근한다. 


맨하탄에는 1개의 버스 터미널과 2개의 기차역이 있다. 포트오소리티 버스터미날(PortAuthority Bus Terminal), 펜 스테이션(Penn Station), 그랜드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이 그것이다. 링컨터널의 맨하탄 쪽에 붙어 있는 포트오소리티 버스터미날은 매일 수백대의 버스가 쉴새없이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출근시간에는 맨하탄 쪽으로 버스전용차선을, 퇴근 때는 뉴저지 방향으로 전용차선을 주기 때문에 거의 막히지 않는다. 매디슨 스퀘어가든과 이어져 있는 펜 스테이션은 미국 동부 각 지역을 이어주는 암트랙 역이면서 롱아일랜드, 뉴저지에서 맨하탄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종착역이다.  펜스테이션과 경쟁하면서 맨하탄의 관문 역할을 하는 기차역이 그랜드 센트럴 터미날이다.


주요 금융기관과 관공서 호텔등이 몰려있는 파크애버뉴는 맨하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앙 분리대가 있는 길이다. 그래서 역시 몇 안되는 양방향 통행길이기도 하다.우리나라 총영사관도 이 파크애버뉴 상에 있고 한때 중국회사에서 인수하려다 미국 정부의 반대로 실패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도 여기에 있다.  원래는 4가(4th Ave)였던 것을 1959년 5월 5일 시의회에서 파크 애버뉴로 이름을 바꾸었다.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길을 가운데서 가로막고 있는 건물이 그랜드센트럴 터미날이다. 


 1871년 10월에 정식 운영을 시작한 이 터미널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오픈된 것은 1913년 2월 2일이다. 어떻게 저 위치에 건물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파크애버뉴가 기차길로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동차의 관점에서 보면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되지만 기차의 관점에서 보면 기차와 기차를 이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면서 터미널의 남과 북을 이어야만할 필요가 생겼고, 마침내 1936년 오늘날과 같은 우회차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엄청난 자동차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까지는 기차의 전성시대였다.  비행기도 대중교통 수단이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대륙횡단이나 장거리 여행은 역시 기차가 대세였다.1947년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을 거쳐간 누적 승객 수는 당시 미국 인구의 40%에 이르는 6천 5백만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미국 정부에 의해 고속도로 확장 사업이 추진되고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항공편이 속속 등장 하면서 기차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이런 흐름에 먼저 희생된 곳이 펜 스테이션이다.  펜실베니아 철도회사에 의해 1901년 공사가 시작된 이 역은1910년 완공되었다.웅장한 역사는 기차의 쇠락과 함께 자본 논리에 매몰되어  1963년 완전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펜플라자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들어게 된다. 1969년이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미래 어느 시점에 그 건물위에 또다른 건물을 지어올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맨하탄의 저층 건물 중에는 이렇게 설계된 것들이 꽤 많이 있다. 여기에 주목한 사람이 윌리암 제켄도르프이다.그는 1954년 기존 건물을 그대로 두면서 그 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무려 150m나 더 높은 건물을 지어올리는 프로젝트를 시에 제안하였으나 부결되었다.1955년 어윈 울프손은 터미널의 북쪽6층짜리 사무실 빌딩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짓는 프로젝트를 시에 제안한다.그의 제안은 몇차례 수정을 거쳐1958년 마침내 승인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도 볼 수 있는 메트라이프 빌딩이다. 원래는 팬암빌딩이었으나 팬암사가 망하면서 메트라이프에서 인수하여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수익 악화에 시달리던 펜센트럴(펜스테이션과 센트럴 터미날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회사) 사는 펜 스테이션 재건축프로젝트 성공에 자극받아 그랜드센트럴 스테이션 재건축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1968년 기존 역사 건물의 기초를 활용하여 그 위에 팬암보다 더 높은 빌딩을 지어올리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1950년대에 추진되던 것과 비슷한 제안이었지만 이번에는 기존 건물의 외양을 철거해버리는 것이 포함되었다. 곧 이 제안은 기념비적인 펜스테이션 건물이 사라져버린 것에 분노한 수많은 시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반대운동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 재클린 케네디였다.재키는 맨하탄을,센트럴 파크를,이 도시 가 간직하고 있는 역사를 누구보다도 사랑한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름다움과 역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때까지 이 자랑스러운  도시의 기념비들을 파괴하여 도시가 생명력을 잃게 된다면  얼마나 잔인한 짓이겠습니까?도시의 과거에서 자극받지 않는다면 도시의 미래를 위해 싸울 힘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미국인들은 과거를 존중하지만 단기간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무시하고 중요한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이제 일어나 그 물결을 뒤집을 때가 되었습니다. 철과 유리 박스로 획일화된 세계를 끝낼 때가 된 것입니다.’(재클린 케네디)


뉴욕시는 마침내 이 건물을 주요 사적지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로 결정한다.이에 불복한  펜센트럴사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지리한 싸움끝에1978년 시의 승리로 마침내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남게 되었다.  2015년 한해동안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약 2천2백만명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1913년 역이 개장할 때 함께 문을 연 오이스터 바도 같이 살아 남아 오늘날 여행객들에게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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