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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an 17. 2017

공짜 대학, 쿠퍼 유니온

미국에 공짜 대학이 있다면? 쿠퍼 유니온(CooperUnion),  한국인에게는 무명이지만 미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대학이다. 2010년 뉴스위크의 조사결과 이 대학은 소규모 대학 중 입학하기 가장 힘든 대학1위(Most Desirable Small School #1) 에 뽑혔고,전체 대학 중에서는 7위(Most Desirable School #7)에 랭크되기도 하였다.  성적이 가장 뛰어난 대학이라기보다는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은 대학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 이유는 2014년까지 입학생 전원에게 풀 스칼라쉽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즉, 공짜 대학이었던 것이다.  왠만한 사립대의 학비가7만불을 넘나드는 미국에서 돈을 한푼도 내지않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입시 시즌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도 지금이 입시준비로 고3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바빠지는 시기이다. 수시전형은 이미 합격자 발표가 끝나서 합격생들은 내년 5월 졸업때까지 느긋하게 남은 학기를 즐길 수 있다.수시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나 정시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들은12월 중 입학 원서를 작성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학으로 발송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입시과정은 끝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로야 간단하지만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험생이 있는 가정은 거의 1년 내내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정시는 매년 4월 1일에 일제히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중 삼중으로 합격 통지서를 받은 학생은 4월에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직접 방문하여 장학금제도를 확인하고 기숙사를 방문하면서  마음을 정한 다음 5월 1일까지 어느대학을 진학할 것인지 최종 결정한다.  복수합격한 학생들이 빠져 나간 빈자리는 대기자(WaitingList)들 중에서 추가 합격자를 선발하여 보충한다. 


뉴욕시에는 모두 70여개의 대학이 있다.  그 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뉴욕 대학교( NEW YORK UNIVERSITY,NYU),  콜럼비아,FIT등은 맨하탄에 있다. 맨하탄 소재 대학 중 거의 유일하게 운동장을 가지고 있는 콜럼비아는 센트럴 파크와 할렘 사이에서 맨하탄 남과 북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반대로 NYU는 맨하탄의  남쪽, 월스트리트, 소호 등과 가까와 맨하탄 생활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이다. 

쿠퍼 유니온은 맨하탄에 있는 학교 중에서도 전임 교수 56명, 전교생 920여명의 아주 작은 대학이다. 뉴욕대(NYU) 건물들로 둘러쌓여 있는 워싱턴 스퀘어에서 동쪽으로500여 미터를 걸어가면 쿠퍼 스퀘어가 나온다. 짐작하겠지만 쿠퍼 유니온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쿠퍼 스퀘어도 물론 쿠퍼 유니언 덕분에 생긴 이름이다.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대학 캠프스는 찾을 수 없다. 학교라 해야 고작 건물 두개동이 전부이다.150여년의 역사를 지닌 구관 (Cooper union Foundation Building)건물과 맨하탄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신관(CooperUnion)건물, 이것이 전부이다.

피터 쿠퍼는 죠지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인 1791년 2월 12일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미국에서 최초로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이 쿠퍼다. 그는 볼티모어와 오하이오 사이에 철도가 부설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동안 모은 재산을 털어부터 볼티모어에3천에이커의 땅을 매입한다. 철도가 개통되면 땅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이 땅의 정비작업을 하면서 뜻밖에도 철광석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부동산 투자에서 그가 제철사업으로 사업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의 공장에서 생산된 철도 선로는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 건설에 납품되었다. 거부가 된 것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급진적인 용어였다.모든 고등교육 기관은 백인 남성들을 위한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 시기에 피터 쿠퍼는 성과 인종과 종교에 관계 없이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스스로 대학을 만들기로 한다.  맨하탄 동남쪽 3가(3RD Ave )와 4가(4th Ave)가 만나는 스튀비슨트 스퀘어(Stuyvesant Square) 가 그가 선택한 장소였다.   1853년 시작된 공사는 1859년 마무리되어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한다.이때부터 2014년 입학생까지 모든 학생들은쿠퍼의 기부 재산을 바탕으로  학비를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쿠퍼 사후, 뉴욕 시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스튀비슨트 스퀘어를 쿠퍼 스퀘어로 명명하였다. 쿠퍼유니온 파운데이션 빌딩(CooperUnion Foundation Building)으로 명명된 대학 건물은 현존하는 미국의 철골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 건물에 사용된 철제 빔은 건축용이 아니라 철도 선로용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열렬한 노예해방주의자였던 피터 쿠퍼는 남북전쟁 기간 중 북부(Union)정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1876년 그린백 파티(Greenback Party)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 85세였다. 역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사람 중 최고령이었고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발명가, 기업가, 정치가, 자선사업가로 1800년대를 종횡무진한 그는1883년 92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비록 아주 작은 규모의 대학이지만 이 대학이 미국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개교보다1년 앞서 완공된 대강당(The Great Hall)은 미국의 진보 정신이 언제나 꽃을 피우는 곳이었다. 그 시작은 바로 링컨이었다.  개교 직후인 1860년 2월 27일 링컨이 쿠퍼유니온 대강당(The Great Hall)을 방문하여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된다.  정적 더글라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 연설은 이후 신문과 팜플렛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된다. 그가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게 된 이 연설은 오늘날 연설한 장소의 이름을 따서  ‘쿠퍼유니온 연설(CooperUnion Address)’로 알려져 있다.


링컨의 뒤를 이어 바로 이 대강당을 변화의 모멘텀으로 삼은 전직 대통령만 해도 그랜트, 클리블랜드, 테오도르 루즈벨트, 우드로우 윌슨, 빌 클린턴 등5명이며, 빌 클린턴은 재임기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곳을 찾아 학생들을 위한 졸업축하 연설을 하기도 했다.현직인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4월 22일 바로 이 대강당에서 그의 새로운 경제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외에도 흑인 인권운동의 산실인NAAC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여성참정권 운동, 적십자 운동, 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한 운동 등 미국 진보의 중요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3개월의 학교 교육이 전부인 발명왕 에디슨이 스스로 학습할 있도록 지원한 대학도 쿠퍼 유니온이다.  


안타깝게도 150여년을 지켜오던 무료 교육은 학교 발전을 위해 신축한 새 건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이 새 교사를 짓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정난으로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2015년 입학생부터는 수업료를 내야 한다. 다만 전교생이 최소한50% 이상의 장학금을 지원받는다. 여전히 매력적인 대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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