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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Oct 12. 2017

나의 와인 음주법

와인의 시작은 머리부터다. 오늘 저녁 상에는 어떤 반찬이 올라와 있을까, 음식의 색깔과 식탁의 조명과 대화의 주제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와인은 어떤 것일까, 불타는 마지막 석양이 가슴을 먹먹하게하는 퇴근길이거나, 스산한 바람이 불어 아 또 가을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 때, 혹은 가을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라면 코끝에 살짝 향기를 남긴 후 입안을 가득 채운 다음, 목젖을 타고 넘어가, 위장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이 음주의 상상. 그럴 때면 버스 터미널 가는 길목의 와인 가게를 들르지 않을 수 없다.


매번 들리는 가게의 진열대는 한결같다. 진열대를 가득 채운 있는 와인도 한결같고, 대개 그 위치도 변함이 없다. 가게를 지키는 주인과 점원도 어제의 그들이다. 와인은 그 버간디 칼라로 내 머리속을 이미 점령한 뒤라 와인을 고르는 나의 눈은 영양을 향해 맹렬리 내달리는 치타와 같다. 이쯤되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누가 간섭할 것이며, 누가 방해할 것인가. 두번 세번 진열대 앞을 왔다 갔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던 와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비싼 와인이 갑자기 할인되는 것도 아니며, 단골 디스카운트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이 한병 한병이 모두 아름다운 것을.  


나는 대개 한병만 산다. 아무리 많이 사도 3병을 넘지 않는다. 와인을 집에 쌓아두고 그것을 바라보다 곶감 빼먹듯 한병씩 마시는 맛도 제법이지만(아 그러나 와인셀러가 한칸씩 비어가는 비통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선택의 지난함을 극복하고 마침내 수백대 일의 경쟁을 거친 한병을 들고 집으로 가는 동안 상상으로 음미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다시 퇴근길에 와인가게에 들러 또다른 와인을 고르는 재미, 그래서 어떤이는 와인은 마시는 재미가 아니라 고르는 재미라고 하였으리라.


와인은 색으로 마시고 향으로 마시고 맛으로 마신다. 이 자연의 색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 이제 시작이다 라는 듯이 퍼져가는 향이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러므로 입으로 확인하는 와인의 맛은 이미 절정 후의 휴식에 불과하다. 내 입은 워낙 청탁불문이라 이 세상의 모든 와인을 환영한다. 다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분에 넘치면 넘치는 대로 이 보라빛 술을 가운데 두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술맛이야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말이다. 가을이다. 와인을 사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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