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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r 26. 2018

정상회담의 돌발변수를 경계함.

1994년 7월 7일 김일성 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발표된 사망원인에 대해 아직도 설왕설래가 있다. 권력 승계자인 김정일에 의한 암살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94년 봄,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준비에 골몰하고 있었다. 문민 정부라 불리던 김영상 정부는 정치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고 이에 김일성이 화답한 것이다. 이를 중계한 사람이 카터 전 대통령이다.


김일성은 왜 이 시점에 남북 정상회담을 수락했을까. 그의 나이가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는 것도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남한의 문민정부 등장도 어느정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은 그의 아들 김정일의 권력 독주에 제동을 걸고 나아가 김일성 스스로 당, 정,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설이다. 1980년부터 시작된 2대 세습 준비는 90년대 들면서 권력의 상당부분을 이미 김정일에게 넘어가도록 만들었다. 94년 무렵에는 외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권력이 김정일의 손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명목상 주석이지만 실권에서는 아들에 밀려있던 김일성이 외교를 발판으로 권력 회수 작업에 들어가자 이에 불안을 느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이 김일성을 암살했거나 죽음을 방조했다는 것이 김정일 역할설의 근간이다.  


만약 이때 김일성이 죽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후속작업들이 진행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북한은 핵을 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남북 경협에 따라 북한의 경제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졌을 것이며, 군축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나아가 자유 왕래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물론 상황이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그룹에 의한 극단적인 선택, 즉 쿠데타나 군사적 도발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이런 상상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그야말로 상상에 그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앞서 두차례의 정상 회담과 달리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가 높은 이유는 첫째 남북 지도자의 위치가 그 어느때 보다 공고하고, 둘째 정세가 당사자 모두에게 매우 절박하며, 셋째 미국이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주변 국가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한반도에서 영구히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켜 장기적으로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첫 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94년과 같은 돌발변수가 이 출발을 방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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