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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r 27. 2018

Separate but Equal

오래된 과거만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오늘도 내일이면 역사가 된다. 내일이면 역사가 될 오늘이 우리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시간은 또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가까운 것도 멀게 느껴지고 멀리 있는 것도 가깝게 느껴진다.


미국사는 어떻게 보면 악당의 역사다. 인간의 탐욕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던 나라, 힘이 곧 정의였던 나라, 이직도 힘의 상징 총을 버리지 못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이 마냥 악당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세계 최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잘못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관찰하였고, 탐욕과 불의는 법의 이름으로 제압하였으며, 인간의 보편적 자유와 평등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는 또한 정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린다 브라운은 집에서 불과 네 블럭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쿨버스를 타고 철길을 건너 멀리 떨어진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그녀는 함께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엄마 아빠에게 물었지만 그녀의 부모도 속시원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의 결과 노예신분에서 벗어나게 된 흑인들은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동안 백인과 분리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Separate but Equal' 이라는 말이다. 동일한 시설, 동일한 제도, 동일한 환경만 제공된다면 인종을 분리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흑인과 백인은 서로 다른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 서로 분리된 장소에서 식사를 해야했고, 버스도 흑인과 백인구역이 따로 있었으며,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히든 피규어의 여주인공이 비를 흠뻑 맞으며 화장실로 뛰어가던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 흑백 분리 정책은 1896년 미국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으면서 정당화 되었다.


1950년 흑인 인권단체에서는 이런 흑백 분리정책의 잘못을 알리고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소송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린다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이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Oliver Brown가족을 포함한 13가족이 모두 이 운동에 동참했다. 그들을 대표하여 흑인 인권단체에서 평등하되 분리한다는 판결을 뒤집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13가족 중 브라운 패밀리의 알파벳이 가장 빨라 이 소송은 이후 브라운 v. 교육청(Board of Education)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54년 미국 대법원은 Separate but Equal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다시한번 악당의 역사를 정의의 역사로 대체하였다.


1954년의 역사적 판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흑백 분리가 교묘하게 행해졌다. 1957년 아칸소주에서는 백인학교에 등교하는 흑인 학생 보호를 위해 연방군대가 동원되기도 하였다. 윌리암 드포가 주연한 미시시피 버닝은 남부의 흑인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기 위해 남부를 방문한 백인 학생 3명의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인종 문제는 먼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곁에서 벌어졌던 살아있는 역사이다. 미국 학교에서 흑백 분리 정책이 실질적으로 완전히 사라진것은 1993년이다. 린다 브라운 소송 판결 이후 39년이나 걸린 셈이다. 미국 인권 운동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은 린다 브라운은 그녀의 고향 캔자스에 정착하여 지내다 2018년 3월 25일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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