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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r 29. 2018

권위가 꼰대가 될 때.

권위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절하게 노력하고 실패하고 일어서고 또다시 공부하고 실행하고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느정도 일가를 이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때 비로소 권위는 모습을 나타낸다. 농경시대의 권위는 연륜에서 나왔다. 어느 시기에 땅을 갈아 엎어야 하며, 어느 시기에 파종을 하고, 이런 저런 증상이 나타날때는 거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서리가 내릴 무렵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 이런 것들은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자연히 노인에 대한 공경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권위를 얻는 방법은 농경사회와 같이 시간에 의지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고시와 같은 지름길도 있다. 새파란 20대도 판검사가 되면 과거의 권위를 연상케하는 '영감'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지름길로 갔다고 해서 그들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들 나름의 남들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그 자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일부를 제외하면 그들은 주어진 자리에 걸맞게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인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권위가 때로 밉살스러워도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 주자.  


그런데 권위를 얻기 위해 샛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개구멍같은, 새치기 같은 그런 방법으로 권위를 얻으려는 자들이다. 이들의 수법은 간단하다. 남들이 평생 걸려서 이뤄놓은 권위(이렇게 만들어진 권위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별개로 하자.)를 그냥 깔아뭉개는 것이다. 그들의 출발점은 순수하다. 권위는 때로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경우도 있어서 사회 발전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권위에 대한 공격은 전체 사회 발전에 힘이 될 때도 있다. 대중은 그런 행동에 열광한다. 그렇게 새로운 권위가 탄생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권위는 새로움을 만들어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옛것을 부수는 것에서 파생된 것이라 생명력이 짧다. 부숴야할 것이 없어지면 그들의 권위도 이슬처럼 사라진다. 이 지점에서 그들은 욕심많은 기득권자가 되고, 이런 저런 말로 자기합리화에 바쁜 꼰대가 된다. 미투 음모론도 '꼼수'적 발상에 능한 사람들의 변이라면 지나친 말인가.


정봉주 씨와 그 주변 인물들의 한달여 행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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