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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Aug 22. 2018

혼밥의 정석

혼밥의 정석은 천천히 먹기다. 혼밥주의자는 식당의 시끌벅적함에도 초연할 줄 알아야 한다. 혼밥은 자기와 대화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구석져서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리라면 조금 도움이 되긴 하겠다. 그러나 넓은 홀 한가운데라도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다. 너댓명이 필요이상의 웃음과 두 세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세상살이를 과장할때조차 혼밥주의자는 능히 침잠한다. 음식을 취하는 행위, 이것보다 더 철학적인 일은 우리 인생에서 찾기 어려운 것 아니겠나.


혼밥을 위해서는 다소 느끼한, 예를 들면 올리브 오일과 치즈가 많이 들어간 파스타 정도면 제법 그럴싸하다. 이런 음식은 아무리 덤덤한 사람이라도 와인을 부르게 한다. 텁텁하고 느끼한 음식을 먹은 후에 청량감 넘치는 피노 느와 한모금이란. 저절로 눈이 감기지 않는가. 이때쯤이면 주변의 소음도 초월한다.


좁은 테이블 한 모서리에 태블릿을 펼쳐, 분위기와는 다소 언발란스인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2'를 읽는 것도 좋겠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정제되지 않은채 난무하는 19세 말엽, 아메리칸 드림으로 포장된 무지개를 쫓는 온갖 인간 군상들, 그들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하나에는 인정도 눈물도 영혼도 없다. 그런 미국사는 다시 와인을 마시게 한다.  


이제는 커피를 마실 차례다. 느끼한 음식과 와인을 마셨다면 커피는 더블샷이라야 한다. 트리플도 나쁘지는 않다. 커피가 나오면 미국사는 덮고 페이스북을 펴 오늘의 감상을 기록할 차례다. 맨하탄 7가의 Legasea 레스토랑, 오늘 서버는 한국인같은 중국인이었다. 여름이라도 가을이 저 건물 모서리까지 와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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