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사유.
변해버리는 모든 것들과, 그 불완전하고 불안한,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받아들임.
큰 상실감에서 비롯된 방황의 시간,
강박적인 산책길에서 마주쳤던 떨어진 꽃잎들에서 발견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하여.
막 떨어진 꽃잎의 색을 머금은, 여전히 그대로 아름다운 비단 조각의 채색과,
내가 괜찮아지는 동안 같이 색이 바래고 변한 그때의 그 꽃잎들.
그 둘을 한 공간에,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놓았다.
조금이라도 더 혼자 방에 앉아 흰 벽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무작정 나섰다. 그냥 걸었다. 바람을 맞으며, 그냥 피곤해 지기 위해 걸었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해져 그냥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무한한 잠 만이 나를 구원해 줄 것 같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공원이었다.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땅을 보고 걸었다.
시선이 닿은 곳에 막 떨어진 꽃잎들이 있었다. 장미 정원 이었던가 보다.
한창 아름다운 빛으로 발하던 꽃들이 아직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눈이 아플 만큼 찬란한 예쁜 색을 아직 지닌 채, 끄트머리부터 이제 막 시들어 가기 시작한 꽃잎들이,
거기 누워있었다.
마치 어제는 그토록 생생했던 순간들이, 지금 막,
이제는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는 그 꽃잎들을 주워, 소중히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토록 여린 꽃잎들.
이제 막 색을 잃어 가기 시작한, 생명력을 조금씩 잃기 시작한 이파리들이 부서질 세라.
그리고 얇은 실크에 그 색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이상 갈변이 진행되기 전에, 생생히 기억해두고 싶었다. 보존해 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책 사이에 조심스레 끼워 서랍 깊숙이 넣었다.
그렇게 한 켠에 넣어두고
아주 천천히, 서서히,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거짓말처럼 그것들을 잊어버리고, 나는 괜찮아지고, 네 번의 이사를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꽃잎은
이제는 완전히 갈변이 진행되어 알아볼 수 없이 변해버렸지만,
그 색을 머금었던 비단은 그때의 그 색을 지니고 있다.
막 바래기 시작했던 그때의 찬란한 색.
서글픔이 끄트머리에 살짝 아린 채, 그대로 멈춘 그 색.
그저 붙여 두었던 양면테이프 조각의 그토록 사소한 자국 마저 그대로 지닌 채.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지만,
이제는 존재했던 흔적도 없이 온전히 내 기억에만 존재하는 그 순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