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실패를 해야만 하는 법
프랑스 파리에서 있다 보면 챙겨보는 몇몇 한국 프로그램이 있다. 나 혼자 산다 (나 혼자 살기 때문에), 골목 식당 (창업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와 백종원의 쓰다 쓴 잔소리는 꼭 내게 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고등 래퍼.
고등 래퍼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혼자서 비트에 맞춰서 랩을 읊고 있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정말 물 불 안 가리고 스스로를 표현하고는 했었다. 당시 전교생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직접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른 경험이 있다. 그때 당황하던 전교생과 선생님의 모습이란. 틀에 맞쳐 할 필요 있나. 그게 랩이든, 노래든, 연설이든 내 마음 담으면 되는 거니깐.
고등 래퍼는 좀 치명적일 정도로 중독적이다. 그들이 하나하나 적어간 가사에는 고등학생의 힘이 있다. "돈을 보여달라 (aka 쇼미 더 머니) 와는 달리 내 생각, 내 개성, 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진짜 생각을 이야기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보다 보면, "맞아, 요즘 고등학생, 대학교 초년생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맞아, 저게 청춘이지." "맞아, 공부만 하라는 법이 어디있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코드를 인생의 바코드로 표현한 부분이나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랩을 하고 싶다는 생각, 외국에서 오래 살다와서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만 혼자서 강해지는 법을 배우게 됐다는 그런 생각들을 듣다 보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만 끝나면 자유라던 마음속의 반항을 조금씩 키우던 가짜 소심한 모범생 내가 생각이 난다.
프랑스 파리로 와서, 학교를 다니면서 지금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내가 파리 정치학교에서 국제개발을 공부하는 건지, 아니면 지금 마케팅/코딩 학교를 다니는지 스스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피식 웃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다들 도서관에서 열심히 UN, OECD, UNESCO, 컨설팅 회사 등등 국제기구 직업을 구한다고 인터뷰 준비를 하느니, 인턴을 구하느니 할 때 나는 인큐베이팅 시설, 투자금, 비즈니스 엔젤, 피칭 발표 등 전혀 다른 걸 옆에서 하고 있다.
주위 친구들도, 담당 academic advisor (학업 담당 선생님)도 처음에 내가 창업을 준비한다고 하니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실제로 내 담당 academic advisor은 역대 내가 현재 다니는 파리정치대학의 PSIA(Paris School of Internatinoal Affairs)에서 매년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인턴쉽 기간중 본인 창업 아이디어로 인큐베이팅 시설에 들어간 학생은 내가 최초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행정적으로 여기저기 고생을 좀 해야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연봉을 협상하는지 워크숍을 들을 때, 나는 지금 앞으로 몇 개월 후면 닥칠 어떻게 투자금을 구할지에 대해 긍긍전전하고 있다. 친구들이 간결하면서도 직무에 적합한 이력서를 적고 있을 때, 난 곧 발표할 피티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내게 맞는 부서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난 그런고 없고 그냥 정말 닥치는 대로 노매드 헐 애플리케이션 코딩 미팅 참여부터 전단지, 배너 디자인까지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다. 하루하루 보이지 않는 벽돌을 쌓다가 부수다가 쌓다가 다시 부순다. 그리고 다시 벽돌 하나 턱.
노매드헐(NomadHer)은 현재 파리에서 내가 준비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여성 전용 여행 애플리케이션이다. 혼자 여행을 약 40개국 정도 다니면서 얻은 아이디어인데, 나 혼자 여행하고 나니 "왠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 넘치더라는 거다." 실제로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안전, 혹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주저하는 여성들에게 "여러분도 혼자 여행할 수 있어요"라고 외치는, 이만큼 전 세계의 많은 현지 여성 및 여행자들이 당신과 함께 있고, 우리는 더 큰 세상을 볼 가치가 있어요 라고 외치는 애플리케이션. 노매드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하고자 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창업은 '내가 나일 수 있는 법', '실패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닐 때는 늘 '실수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틀리지 않는 법, 방심하지 않는 법, 실수하지 않는 법, 실패하지 않는 법. 그러다 보니 내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담대하게 도전하지 못했다. 맞는 답안이 두 개라고 생각해도, 하나 만을 골라야 했다. 저것도, 이것도 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을 가는 법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줬고, '성공'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해서 사실 생각해 볼 여지를 주지 않았다. 행복하는 방법,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 실패해도 괜찮은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내가 하고싶은 거 말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에 내 가치를 맞추기 바빴기 때문이다.
다시 고등래퍼로 돌아와서. 하고 싶은 말을 차곡차곡 쌓아 세상에 솔직하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랩. '고등학생'이라는 사회가 주어진 틀을 벗어나서 진짜 하고싶고,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기대되는 것 같다. 달라도 되는 법, '내'가 '나'일 수 있는 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실패가 실패가 아님을, 나는 내 길을 걸어가는 진짜 멋있는 개X 마이웨이 임을. 실패하지만 배워가는, 내가 누군가임을 배워가는 진짜 멋있는 실패아닌 실패임을.
30억 여성들의 혼행을 응원하는 글로벌 여성 여행자 앱 노매드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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