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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Mar 25. 2019

파리에서 뉴욕으로

파리에서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내 통장에는 단돈 5만 원이 있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내 통장에는 단돈 5만 원이 있다.


내일 먹을 점심을 싸다가 웃음이 픽 나왔다. 배가 너무 고파서 냉장고에 남은 김치와 치즈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내일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게살 크림 스파게티도 열심히 만들었다. 배가 고프면 막 우울해지고 서러워 지기 마련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배 고프면 되는가. 식비 아낀다고 외식은 파리에서는 웬만하면 하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먹고 싶은 거, 건강에 좋은 음식은 손수 만들어 먹는다.


3월의 말. 나는 파리에서 뉴욕으로 간다. 그것도 초대받아서. 비행기 표, 숙박비까지 다 지원받고 초대받아 당당하게 8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내 스타트업 노매드헐(NomadHer)을 발표하러 간다. 한국에서 자란 내가 파리에서 뉴욕을 오고 가는 여자라. 혼자 "꽤 근사한데"라고 생각하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가식 같은 거 말고, 진짜 내가 조금은 대견해졌다. 나 오늘만큼은 스스로한테 칭찬해 줄 수 있지 않는가.


요리를 하다가 내 통장잔고가 생각나기는 했다. 이번 달 말까지 쓸 수 있는 돈은 5만 원이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난 통장 잔고 5만 원이지만 파리에서 뉴욕을 오고 가는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장학금이 없었으면 파리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니깐, 당초에 나는, 장학금이 없었다면 파리에 올 생각도 올 수도 없었다. 국제개발을 공부하고 싶다고 대학원을 파리 정치 대학 한 군데만 지원을 했다. 6개월 동안 10번을 고치고 고쳐 합격을 했다. 합격을 하고 나니 현실이 다가왔다. 1년 등록비는 15,000유로 (약 2,000만 원). 2년 과정이니 학비만 한화 4,000만 원이다. 거기다가 학비만 내나? 파리는 더럽도록 물가가 비싸다. 보증금이 많은 서울이랑 비교하자면 그나마 서울 살이에서 맷집을 키운 상태이지만, 집값, 통신비, 교통비, 식비 등등하면 그래도 한 달 보통 생활비 100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 그렇게 혼자서 계산을 해보니 적어도 약 7,000 만원은 있어야지 파리 2년 유학 생활이 가능하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7,000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가. 대학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고작 2년 일했다고 7,000만 원을 모았을 리가.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말도 옛날 말이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못한다.


아이러니 하기는 했다. 국제 개발을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기는 했지만, '국제 개발'을 공부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니깐. 부모님은 국내 대학도 좋으니 지원해 보라고 하셨지만, 이왕 하는 거 더 큰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서 공부하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그때 한창 어른으로 보이던 대학생 언니 오빠가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고등학생 때가 대학생 때 보다 훨씬 돈이 더 많다'라는 거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너무 현실로 다가온다. 어른이 된다는 건 '교통비', '식비', '통신비', '수도비'를 매일 꼬박꼬박 낸다는 뜻이다.


프랑스 정부에서 매년 일정 학생 수만큼 국가 장학생으로 학비 및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 나는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열심히 장학금 지원서를 썼다. 장학금 면접관은 최종 면접에서 내게 "지원서가 아니라, 왜 10페이지 논문을 써왔냐."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간절했던 만큼, 장학생에 선정될 수 있었고 그렇게 난 내 두 동생 뒷바라지로도 충분히 힘겨운 부모님 손 벌리지 않고 프랑스 파리라는 곳에서 유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프랑스 정부에서 매달 615유로 (약 80만 원)을 지원받는다. 그중에서 장학금에서 커버되지 않는 약 30만 정도를 학비를 할부해서 내고, 주거비를 지원받아 아주 조금 집세를 내고 (12만 원), 그러고 나면 약 38만 원 정도가 남는다. 비싸디 비싼 파리에서 10만 원 조금 남짓한 돈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작년에는 그나마 했던 아르바이트가 도움이 되었지만, 올해는 학업 및 스타트업 준비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매달 일정 주어진 금액에서 생활하다 보니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생기게 됐다. 필요하지 않은 이상은 절대 사지 않는 미니멀리즘이 최근 선진국 등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나 역시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즘'에 동참하게 되었다. 절대 필요하지 않은 화장품, 옷은 사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음식만 사서 음식물 쓰레기는 남기지 않는다. 또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쓰레기를 내지 않는'삶 (불어로는 Zéro déchet)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지를 배우는 중이다.


내가 육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난 육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테리언 pescotarian이다) 생활비 절감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 프랑스는 농업 강국이라 그런지 야채, 과일이 엄청 싸다. 감자 1kg에 1000원, 양파 1kg에 1000원, 달걀 한 판에 1000원. 거기다 브로콜리, 당근, 망고, 파프리카, 버섯, 호박, 오이 등등 내 주 요리 재료들은 보통 실컷 장바구니에 담아도 만원이 채 넘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주일 내내 콩 삶아 먹었다가 푸념 아닌 푸념하면 알게 모르게 가끔씩 10만 원 용돈 부쳐주는 든든한 여동생 은지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해 볼 수 없을 일들.

   2년간의 석사 과정 졸업이 곧 눈 앞에 두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해 볼 수 없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다면, 지금 해 보고 싶었다. 왜냐면 난 고작 통장에 5만 원이 있고, 잃을 돈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 한 순간 한 순간에는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주고, 먼발치에서 기도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다 함께 이 길을 간다고 생각했고, 당신들이 믿어주는 만큼 나도 나를 믿고 한 발짝 한 발짝 내 디어 보고 싶었다. 나중에 5년 후, 10년 후가 되면 어쩌면 이때의 내가 무척이나 그리워질 수도 있으니깐.


파리에 놀러 왔던 교수님 아내분께서, 본인이 대학생이던 당시에 파리로 배낭여행을 왔었는데, 큰 맘먹고 사 먹은 몇천 원짜리 크레페가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도 물론 하루 종일 마음은 오르락내리락한다. 500원 더 비싼 샌드위치 앞에서 고민하는 나,  비록 통장에는 잔고 5만 원이 있는 나지만 그래도 이만큼 성장한 내가 훗날 많이 대견하고 아련할 것 같다.

  

이 세상의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청춘들에게 뭉글뭉글한 응원을 던져본다.


지금이 아니면, 해볼 수 없었기에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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