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없는 드라마 = 출산기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게 이런걸 말하는걸까.
작년 지난 3월 초, 첫째 아이 달콩이를 임신한 걸 알았을 때만 해도 초음파 사진을 보며 젤리곰 같이 작고 귀여운 존재가 내 속에서 살아 숨쉰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콩닥콩닥, 아니 '부꾸부꾸'라는 소리에 가깝게 뛰는 심장 소리. 약한듯 하면서도 그 속에서 위대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몇날 몇일을 뒤로 미뤄 받은 핑크색 임산부 뱃지를 가방에 달았더니 그제서야 임신한게 실감이 났다. 어렵사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긴 생머리 여고생이 다가와 자리도 양보해줬고, 나이 지긋한 아버님뻘 아저씨들도 건물 출입문을 대신 열어주시는 배려를 받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배려 속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280일, 40주를 보냈다.
막달이 되서는 1주일에 한번꼴로 1시간 거리 산부인과를 들락날락했다. 산부인과 막달 검사에서 아가는 3.2kg으로 예상됐고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나는 자연진통을 기다리기로 했다. 집에서는 무한 예행연습이 시작됐다. 유튜브에서 '1시간 안에 순산하는 법'. '자연분만 성공기'를 찾아보면서 열심히 콩벌레가 등을 굴리듯 자세 연습도 해보고, 아기가 엄마 몸 속을 잘 내려오게 하기 위한 요가도 따라했다.
6개월 전에 앞서 출산한 친구랑 통화도 했다. 친구는 아기가 태어난 뒤에 가장 처음으로 해줄 말도 고민해보라고 했다. 출산할 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좀 더 멋진 말을 못해준 게 아쉬웠다고 한다. 무통주사를 놓고나면 살것 같은데 이 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진통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 힘을 줘서 아기를 자궁 아래로 내보내야 분만을 할 수 있다는 '꿀팁'도 얻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봤다.
"맞아, 엄마 목소리를 처음 듣는건데 무슨 말을 해야할까. 엄마아빠한테 와줘서 고맙다고 할까? 아니야 그건 너무 진부해. 음... 잘 키워줄게? 아냐 이 이건 너무 강압적인 것 같아. 생일 축하한다고 할까? 음 그래 그거 괜찮은 것 같아."
나름의 분만 계획도 세웠다. 열심히 진통을 겪고 (이때까지만 해도 진통의 통증을 몰랐다 :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뼈가 터지는 것 같은 상상 초월할 통증이며 소리지를 힘도 못내는 정도의 아픔이다) 아기가 "응애!"하고 태어나면 남편은 땀이 송글송글 맺힌 내 머리에 키스를 해주고, 우리 가족 셋이 활짝 웃는 가족사진을 찍은 뒤, 처음으로 젖을 물리는 장면. 그게 나름의 큰 틀이었다.
하지만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이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모든 딸에게 출산 경험담을 생생하게 전수받을 수 있는 존재는 친정엄마다. 자연스럽게 나도 출산의 기준을 친정 엄마로 잡았다. 친정엄마의 경우는 나와 내 동생을 모두 38주 정도에 자연분만으로 3kg 아기를 낳았다. 엄마는 수술은 회복도 느리고 아기에게 안좋다면서 무조건 자연분만을 해야한다고 했다. 엄마는 아기는 작게 낳아 크게 키워야한다며 나의 임신 기간 내내 혹시나 누워서 자고 있는 나를 보면 깨워서 움직이게 만들 정도였다. 나 역시 가장 믿음직한 선배(?)의 출산후기를 들으며 알게모르게 나와 비교하고 있었다. 애초에 하늘에서 생명을 주실 때 스스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예정일이 지나면서 결국 나는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40주 3일이 되던 작년 11월 11일 오후 7시. 근 1달 동안 이것저것 싸놨던 출산가방을 들고 병원에 도착했다. 분만실은 병원 지하에서도 한참 걸어들어가야하는 외진 구석에 있었다. 임신기간 동안 여러차례 병원을 들락날락했지만 이 곳에 분만실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신성한 생명이 탄생하는 곳인데 가장 좋은 위치에 있어야하지 않나, 근데 공기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골방에 있었다.
간호사가 나타나 분홍색 치마까운을 전달했다. 팬티와 속옷, 악세서리 모두 다 탈의하고 입으라고 했다. 남편은 비닐로 된 가운을 입고 우리는 가족분만실로 이동했다. 두평 남짓한 분만실은 유튜브에서 타인의 출산 후기로 만났던 모습과는 달랐다. 생각보다 너무 좁고 어두웠다. 상체를 움직일 수 있는 침대와 그 옆에 간이침대, 그리고 TV 뿐이었다. 여기에서 진통을 겪고 아기까지 낳는다고 했다.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간호사가 남편을 잠시 밖에 내보냈다. 기본적인 신상 조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내 직업, 키, 막달 몸무게, 혈액형, 종교, 그리고 유산 및 낙태 여부까지... 기본 조사를 마친 뒤 나는 자궁경부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질정제를 오후 9시부터 투입하고 다음날 유도분만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기로 했다.
11일 오후 9시. 질정제 투입. 진통의 세기로 치면 분만 전까지 가장 약한 통증일텐데 체감으로는 질정제를 넣고나서 생기는 고통이 제일 컸다. 처음에는 생리통처럼 아랫배와 자궁경부, 엉덩이 쪽이 전체적으로 싸한 느낌이 들더니 20분 간격으로 전체 배를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너무 아팠다. 끙끙 신음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밤 사이에 나는 한숨도 못잤고 간이 침대에 누워있던 남편 역시 소변통을 비워주거나 나를 일으켜 세워줄 때 뒷처리를 담당하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다.
12일 새벽 2시. 통증을 유발하는 물체가 몸안에 들어가서 그런지, 갑자기 강력하게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액을 꽂고 있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옆 간이 침대에서 겨우 잠을 청한 남편을 깨울 수 밖에 없었다. "오빠 나 토할 것 같아. 제발 도와줘 간호사 선생님 좀 불러줘." 놀란 간호사 선생님들은 봉투를 들고왔고, 마지막 만찬이었던 돈까스를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관장을 했는데도 갑자기 대변이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때는 나도 스스로 당황스럽고 창피했다. 참아보려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오빠, 나 진짜 똥 쌀 것 같아 ㅠㅠ 간호사 선생님 좀 불러줘." 간호사들은 소변을 보라고 준 대야에 검정봉다리를 씌워서 건내줬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대에서 겨우 바닥에 내려와 남편도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대변을 보고 말았다.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따끈따끈한 신혼이었는데 내 모든 치부를 보여준 것 같아서 너무나 민망했다. 나는 나도 어이없어서 미안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도 어이없어서 웃고 있었다.
12일 새벽 4시, 해가 뜨기 전이 제일 어둡다고 했던가. 정말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서 힘들었다. 20분 간격으로 신음소리를 내는 나 때문에 남편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분만실에 있는 TV를 켜서 보기로 했다. 리얼리티 연애프로그램, 대장금, 다큐멘터리... 집에 TV가 없었던 우리 부부에게 TV는 시간 가는지 모르게 해주는 마취제 같았다. 이때까지의 과정도 설명할 수 없이 힘들었는데 촉진제를 투여하는 본게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내가 해낼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구심에 휩쌓이면서 그렇게 날이 밝았다.
-다음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