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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진 Nov 03. 2024

왁스

근사한 사람

작은 알갱이 같은 꽃잎이 망글망글 달려있는데,

우리가 어렸을 적 꽃을 그렸던 모양처럼

동글동글한 다섯 잎으로 생겼다.

잎이 코팅된 것처럼 톡톡해서 만졌을 때

힘이 있고 줄기는 딴딴하다.


왁스는 왁스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

꼭 코를 박고 킁킁하면

계속 맡고 싶은 밤꿀 향이 난다.


생명력도 강해서 오래 그 모습 그대로다.

마르기 시작하면 꽃잎이 오므라드는데

크게 형태가 변하지 않고

살짝 오므라드는 것 마저 참 왁스스럽다.


왁스를 보면 겨울나무가 떠오른다.

가지런히 하나로 뻗어가는 줄기의 모양이

소나무와 비슷해서인지 서 있는 나무 같다.

그중 청초한 겨울나무.


겨울나무는 마치 뼈만 남아서 앙상한데

그 나무줄기가 가진 선들이 선명해진 걸 바라보면

나무에게서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잎이 거둬지고,

가지고 있는 역할과 옷가지들을 벗고

본래의, 본연의 나를 보여준다.

거리낌이 없다. 나를 드러냄에.


모든 것이 투명해진 것 같은 겨울나무를 보면

앙상함이 곧 맑고 투명한 청초함으로 다가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봄, 여름, 가을이 되면

다시 알록달록하게 기개를 펼쳐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지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아주 추운 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날에

밤바다에 가면 두피까지 쩌릿할 정도로

춥다 못해 온몸이 아릴 때,

모든 생각들이 한방에 사라지면서

춥다는 감각만 살아있고 세상이 단순, 명료해진다.

가끔이지만 시원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그 짜릿함이 생각날 때가 있고 좋아한다.


그 추운 겨울의 바람과

겨울나무의 앙상하고 청초한 것이

요상하게 닮아있다.


매섭게 추운 바람도

앙상한 겨울나무도

본래의 나로 보이는 것이,

맑아지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가.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단순하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란 걸 

나무에게서 배운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나라는 고유함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


아주 아주 근사한 사람. 왁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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