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가게 아가씨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by 신모찌

어릴 적에 꿈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비디오 가게 주인, 만화책방 주인, 서점 주인.... 하나로 통일하면 자영업자 정도가 될까요. 저런 꿈을 갖게 된 건, 가게들이 어릴 적 제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들이었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에 상가에서 정말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상가 내의 가게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들이랑 수다를 많이 떨었습니다. 저의 문학적 소양, 문화적 관심은 상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키워주신 거나 다름없어요.

언제나 좋은 영화들을 추천받았고, 보물 같은 재밌는 만화책들을 발견하게 해주셨고, 이 생애 꼭 한 번은 읽어야 하는 동화책들을 선물 받았었죠.


그래서 그럴까요?


저는 요새 대형서점들의 '베스트셀러', 네이버의 '영화 평점' 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옛날의 가게 주인아저씨들이 추천해주는 것보다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하고, 내공 같은 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요새는 빅데이터 분석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영화와 책들을 애플리케이션에서 딱하고 찾아주기도 하던데... 물론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많이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다거나 내 시야를 넓혀주는 느낌은 아니에요.


그래서 언젠가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주인공 켈리가 운영하는 'The Shop around the corner'같은 서점이자 비디오 가게를 꼭 열고 싶어요.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유브 갓 메일>(감독: 노라 애프론, 1998)을 보면 주인공 켈리(맥 라이언)는 'Around the corner'라는 작은 어린이 서점을 운영합니다. 동화책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고, 구하기 어려운 동화책들을 들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낭독회를 열기도 하죠.

그녀가 추천하는 책은 대형서점에서 이야기하는 '베스트셀러'하고는 달라요. 모든 서점에 똑같이 놓여 있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그날 그 서점을 방문한 손님의 표정을 보고,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울리는 책들을 추천하죠. 제가 하고 싶은 것도 그런 추천입니다.


제목은 '비디오 가게 아가씨'인데, 내용은 계속 '서점 아가씨'를 향해 갔네요.

추천하고 싶은 책도 산더미지만,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도 워낙 많은지라 비디오 가게 아가씨라는 타이틀로 영화들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소소하게 재밌는 영화들부터,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들까지 넓은 범위 내에서 추천하려고 해요. 그게 바로 비디오 가게 주인 추천의 묘미이기도 하거든요.


어릴 적을 돌이켜 보면 주인아저씨들의 추천에는 항상 세 단계가 존재했어요.



1단계. 내 인생에 꼭 봐야 하는 영화.

2단계. 마니아가 되려면 꼭 봐야 하는 영화. (보통 1번에서 취향을 파악한 아저씨가 좀 더 이제 취향에 맞고 전문적인 영화들을 추천하게 되죠.)

3단계. 쌍방향 추천. (3단계가 되면 이제 함께 영화 내용을 토론하기도 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면 서로 추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비디오 가게 아가씨의 꿈은 3단계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겠죠? 어릴 적 상가 주인아저씨들이 저를 보면 기특해하실 거예요 아마....


그럴 때 있잖아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네이버에 '로맨틱 코미디 영화 추천' 리스트를 검색하게 되는 때. 다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추천 목록에 뜨는데, 어떤 영화를 먼저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때. 아니면 이미 본 영화들이 나와서 이제는 더 볼 영화가 없는 때. 저도 그런 적이 많았는데, 그런 때 가게 주인아저씨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항상 새로운 영화들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이제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보려고 해요.

그래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휴식과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으면 합니다.





*미처 못다 한 이야기: 영화 <유브 갓 메일>


이 영화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큰 줄거리는 전자메일을 통해서 만난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켈리(맥 라이언)의 작은 어린이 서점은 근처에 들어선 대형서점에 큰 위협을 받습니다. 가격을 따라가기도 힘들고 좋은 커피와 쾌적한 공간을 줄 수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분명 켈리의 서점에는 그 만의 매력이 있어요. 책을 사랑하는 켈리의 마음이라던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딱 맞는 책을 추천해주는 켈리의 추천까지, 'The Shop around the corner'의 단골 고객들이 쉬이 발걸음을 대형서점으로 돌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폭스 (톰 행크스)는 편리함과 쾌적함으로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사장이죠. 메일을 통해서 켈리와 언제나 문학과 뉴욕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폭스와 켈리는 사뭇 다릅니다.


전자메일을 통해서 서로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두 주인공. 만나고 싶지만은 혹시 그 환상이 깨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해요. 웬걸 만나보니 두 사람은 이미 철천지 원수지간 사이였죠.

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 앞에는 메일을 통해서 서로 주고받았던 공감과 유대감이 있어요.


획일화된 '베스트셀러'를 대표하는 게 폭스라면 결국 폭스가 켈리를 사랑하게 되는 건, 여전히 우리는 그 획일화된 추천 속에서도 따뜻함과 스토리를 원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전자 메일을 통해서 만난 두 사람이 결국 오프라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어요.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도 있죠.

90년대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항상 그런 것들에 주목합니다. 워낙 사회가 빠르게 변해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 같아요. 핸드폰, PC, 대형마트, 대형서점 등 과도한 편리함 추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영화는 담아내려고 노력하죠. 영화 <유브 갓 메일>도 그런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비디오 가게 아가씨가 비디오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뉴욕 여행 준비 중이라면 꼭 한번 보시길 바라요. 그리고 주말을 로맨틱하게 보내기 위한 로코물로도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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