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 칼럼

누군가는 날 기억해

-얀 스테인, 루벤스, 에스테반 무리요; 성탄절 풍속화

by 양양

산타 클로스의 기원

얀 스테인, <성 니콜라우스 축제>, 1660-1665

찬 서리 조용히 내려앉은 이른 아침.

한 5살쯤 되었을까, 작은 여자아이가 사탕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팔에 걸치고 두 손에는 인형을 꼭 쥔 채 행복에 겨워 있다. 엄마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운지 "얘야 이리온" 하고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이 아이의 뒤에는 제법 큰 사내아이가 어찌 된 영문인지 서럽게 울고 있다. 사내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키 작은 남동생의 다른 손에는 회초리가 쥐어져 있다. 보아하니 이 집안의 맏이는 올 한 해 착한 일을 하지 않아 바라던 선물 대신에 회초리를 받은 모양이다. 집안일을 거들고 아이들을 돌보는 소녀가 사탕과 빵을 나누어 주겠다며 우는 아이를 달래 본다. 멀찍이 앉아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집안의 가장은 이 모든 게 마냥 즐겁다는 듯 흐뭇한 표정이다.

우는 아이 한 명 빼고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이때 붉은 커튼을 젖히며 조용히 떠나려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수상쩍은 이 남자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몰래 놓고 이제 막 집을 빠져나가려는 성 니콜라우스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얀 스테인이 그린 것으로 네덜란드의 가장 큰 축제일인 성 니콜라우스 날을 맞은 어느 서민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 니콜라우스는 4세기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자 우리가 아는 산타 클로스의 기원이다. 그는 오늘날의 터키에 해당하는 지역의 주교였는데 남몰래 많은 선행을 했다. 그런 그가 죽자 프랑스의 수녀들이 그의 선행과 뜻을 기념하고자 그의 탄생일 즈음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 유럽에는 어린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성 니콜라우스의 날이 행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에도 성 니콜라우스의 이야기가 전해졌고 영어 발음에 따라 산타 클로스로 불렸다.



산타 클로스의 부재

멋진 트리와 달콤한 선물, 그리고 아이들의 미소로 행복이 무르익어가는 밤, 그러나 어딘가에서는 슬픈 동화가 쓰인다.

선물은커녕, 어른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죽음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있다. 고아 이거나 고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집이 바람막이가 되지 못해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뉴스 사회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들의 모습은 흡사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와 위다의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짐>, 1612-1614

성탄절 전야, 성냥을 한 갑도 팔지 못해 집에 가지 못하는 성냥팔이 소녀는 술주정뱅이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사는 아동학대의 피해자이다. 추운 길거리에서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소녀가 그은 성냥 한 개비는 따뜻한 난로를 환상으로 피워냈다. 성냥을 그을 때마다 소녀가 갈망하는 것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예쁜 트리가 있는 집, 맛있는 음식들로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 그리고 보고 싶은 할머니. 마지막 성냥 한 개비까지 다 태우고 나자 소녀의 환상은 사라지고 소녀의 생명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누구도 묻지 않아 알 수 없는 소녀의 이름처럼 아무도 모르게.

같은 날, 개를 끌어안고 예배당 안에서 얼어 죽은 소년 네로도 성냥팔이 소녀와 마찬가지로 아동학대의 피해자이다. 빈부격차로 인한 차별과 어른들의 무정함과 무관심은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환경이었다.

<플랜더스의 개> 에니메이션영화의 마지막회 장면

그 와중에도 네로에게는 꿈이 있었다. 미술에 재능이 있어 화가가 되고 싶어 한 네로는 아베르펜 대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짐>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다. 성탄절을 맞아 그림을 소장한 대성당이 모두에게 무료로 그림을 공개한다고 하자 가난한 네로에게도 드디어 그림을 볼 기회가 왔다.

모두가 잠든 성탄전 전야, 달빛에 빛나는 루벤스의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며 네로는 감격에 찬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파트라슈, 이걸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어."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내려오는 예수. 이 예수의 발 밑에는 역설적으로 사랑과 긍휼을 받지 못한 어린 소년의 주검이 놓였다.

만일 루벤스의 그림이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다룬 것이었다면 혹 네로가 죽지 않았을까? 어쩌면 한 겨울의 추위가 아니라 희망의 부재가 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닐까?

성탄을 맞은 이튿날 아침, 아이의 주검을 발견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제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는 작은 나눔조차 인색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산타 클로스의 귀환

어린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 산타 클로스. 그는 어디에 있는가? 이웃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정신은 정녕 이 시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인가? 아직 낙심하기엔 이르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구걸하는 아이>, 1645-50

평생 힘들게 일하며 모은 돈을 불우한 학생을 위해 선뜻 장학금으로 내놓는 어르신들, 개인과 단체가 십시일반 모은 결식아동 돕기 성금, 소아암 환자 돕기 성금, 재능과 물자를 나누는 각종 자선바자회는 이 추운 겨울,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나눔이다.

지난달, "태아생명보호를 위한 마리아수녀회 자선대바자회가" 올해로 33회를 맞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바자회는 무려 1984년부터 낙태를 예방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태아생명보호를 위한 활동 기금 마련을 조성해왔다. 마리아수녀회를 비롯하여 여러 기업과 단체 및 지역 공동체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미혼모와 복지시설에서 자라는 영유아들을 보살피는데 매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장애인 문화예술원, 한국 장애인개발원과 국내 명품 브랜드 쁘렝땅(PRENDANG)이 후원하는 제4회 이음 바자회와 자선경매 이벤트가 성황리에 종료됐다는 기사도 접했다. 이음 바자회는 올해 처음으로 예술가 소장품 경매 이벤트를 실시했다고 한다. 기증된 귀중한 소장품들은 높은 가격으로 입찰됐고 수익금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아동들의 문화예술 프로그램비로 지원된다고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는 8년째 미술 영재 장학사업 <드림그림>을 후원하고 있다. 미술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과 다양한 교육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올해 제18회 서울디자인 페스티벌에 드림그림 장학생들이 참가하고 직접 만든 문구제품을 선보인다고 한다. 수입금은 재정적 도움이 필요한 아동 단체나 어린이병원에 전달될 예정이란다. 학생들의 솜씨로 만든 작품이 수익을 창출하여 불우한 친구들을 돕는다는 데 무엇보다도 큰 의의가 있다.



작은 나눔, 놀라운 기적

타인을 위한 작은 나눔. 그것도 어쩌다 한 번 한 미미한 선행이라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불행을 딛고 성공한 미국 여성의 대표적인 아이콘 오프라 윈프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단 한 번의 선행이 생각지도 못한 크고 놀라운 기적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언제가 그녀가 자신의 유년기 시절의 감동적인 일화를 고백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성탄절만 되면 유난히 외롭고 슬펐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이 다 받는 성탄 선물을 혼자만 못 받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마련된 단칸방에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교회의 허드렛일을 하며 간신히 살아가는 형편이었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해 성탄절 아침, 누군가가 이 어린 소녀가 사는 작은 방 문 앞에 사탕 꾸러미와 인형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그녀는 처음 받아보는 성탄 선물에 너무나 기뻤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자신도 친구들에게 말할 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흥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이 놀라워 몹시 행복했다고 한다.

그 기억으로 오프라 윈프리는 유명인이 된 지금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데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녀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은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우며 한 사람의 선행이 맺는 감동적인 결실을 그들의 삶으로 증거하고 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포도와 메론을 먹는 아이들>, 1645–46,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따뜻한 이야기가 씌어야 한다. 달콤한 빵 굽는 냄새로 진동하는 부엌, 상점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 갖춰 입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이것들과 상관없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삶을 조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곧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한다.

이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우리의 작은 선행과 사랑의 나눔으로 시작될 것이다. 처음부터 거창할 것은 없다. 아무도 묻지 않은 소외된 아이의 이름을 묻고, 재능 있는 아이의 꿈을 응원하고, 이웃에 사는 아이들을 기억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되는 아주 작은 기적을 기대해 보자.

이 겨울이 보다 행복해지도록.





본 글은 한성자동차가 운영하는 웹-매거진<위드한성> 12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with.hansung.co.kr/Article.php?windex=95&aid=AT20191218164945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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