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별다른 기대도 흥분도 없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1월의 첫 날을 넘긴다.
남편을 위해 제법 솜씨를 부린 저녁상을 물리고 어수선한 부엌을 정리한 뒤에야 그래도 새로운 출발을 위한 나만의 의식 하나쯤은 치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화집을 들췄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림 한 점을 꼽으리라!
마침 미국의 풍경화가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의 풍경화가 눈에 들어왔다.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한 루미니즘(luminism) 화풍의 부드럽고 투명한 빛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신비하고 몽환적인 낭만파의 정조가 짙게 베인 그림.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 <빙산>, 1891 검푸른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배 한 척이 외로이 항해하고 있다. 눈앞엔 거대한 빙산이 떡하니 버텨 섰다.
이 장애물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 항해를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는 신의 별난 심술이요 지극한 사랑이다.
신은 말한다. "인간의 활동은 너무나 쉽게 해이해지기 마련이어서 무조건 금방 휴식을 취하려 들지. 그래서 나는 자극을 주고 영향을 주는 동반자로 사탄을 붙여주는 걸 좋아하노라"(괴테,『파우스트』). 그러니 내 딸아 어디 한번 잘 피해가 보렴!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걸머지는데......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가련한 배를 바라보는 나의 맥박이 불안으로 요동친다. 별안간 살고자 하는 본능이 깨어난다. 나는 불안의 중심에서 삶을 의욕한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뱃머리를 돌리자!
그러자 신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말한다. "신의 진정한 아들들아, 너희는 풍성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즐겨라! 영원히 힘차게 작동하는 생성의 힘이 사랑의 다정한 울타리로 너희를 에워싸리라. 아물거리며 떠도는 것을 변하지 않는 생각들로 단단히 붙잡아라!"(괴테,『파우스트』).
우리가 원컨 원치 않건 살아있는 한 쉼 없이 찾아드는 고난과 역경을 피할 길 없다. 좀 쉴 만하면 어김없이 사건 사고가 터지고 가까스로 하나의 성취를 이루면 달려오는 적병과 응전을 치뤄야 한다. 내가 도전을 원컨 원치 않건 내 자기 자리 하나 온전히 지키는 일은 전쟁을 치루듯 치열하고 처절하다. 그것이 인생인 것일까?
나는 다시 저 거대한 빙산을 바라본다. 저것은 바깥에서 들이닥친 시련! 저것은 내 안에서 쏟아 내리는 불안과 의심의 빗줄기가 만들어낸 허상의 성벽! 이 모두가 내가 살아 있어서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좋소이다 신이여! 태롭게 뒤뚱거리는 생의 자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느슨해진 정신줄을 팽팽하게 당겨 보리다! 비록 내일의 길이 오늘처럼 굽이치고 질펀한 길 그대로라 할지라도, 그러나 나에겐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생의 본능이란 게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