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때를 벗고
나는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다(장욱진).
장욱진, <나무와 새>, 1957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생애를 함께한 입지적인 화가로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유영국을 든다. 여기에 단연 장욱진(1918-1990)을 빼놓을 수 없다.
화단의 화가들과 비평가들이 장욱진의 인물됨을 말하기를 "서양을 깊이 알면서도 동양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 화백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유학하여 서양미술을 배웠으나 그의 화폭에서 춤추는 초가집, 까치, 붉은 소, 물가에서 발가벗고 노는 아이들...... 은 천상 우리의 자화상이다.
무엇보다도 화가 자신이 너무나 한국적이다. 서구 모더니즘의 산물이라면 덮어놓고 환영하는 세태와 달리 그는 한국의 전통성을 향수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이런 장욱진은 도시살이를 몹시 힘들어했다.
특히 서울의 소음을 견디지 못한 그는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다"며 서울미대 교수 생활(1954-1960)도 내팽개치고 교외로 나가 한옥집을 짓고 살았다. 흙과 나무만 가지고 지었을 뿐 아니라 유리나 쇠붙이 같은 건 일체 쓰지 않았다. 창에는 유리 대신 창호지를 발라 은은한 광선을 즐겼다.
장욱진, <산과 나무>, 1984 화가의 집 주위는 소나무가 둘러져 있고, 문턱엔 강이 흘렀다. 고요하고 고독한 가운데 오롯이 그림에 집중하는 한적하고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저녁 여덟 시 아홉 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났다. 새벽이슬 맞으며 산책을 다녀온 뒤 그림을 그리고, 해가 중천이면 강가에 나가 자연과 마을 풍경을 관찰하고, 해가 지면 툇마루에 앉아 달과 별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는 경기도 덕소의 한강가에서 십 이년, 수안보에서 육 년, 용인 신갈에서 수년을 보냈다.
산 따라 물 따라 그린 풍경
나는 네 계절 모두가 동화처럼 펼쳐지는 세계에서, 강변에 자리한 '화가 별장'의 주인으로 십이 년을 살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천진스러운 놀이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보곤 한다(장욱진).
화가가 서울의 먼지를 털어내고 화폭에 풀어낸 세계는 심플하다.
나무가 있고, 나무 위에 집이 있고, 개와 까치가 있고,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이는 장욱진의 회화에서 줄곧 보이는 보편적인 기호로서, 그의 그림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욱진, <풍경>, 1978 또한 여기에는 오랜 전통의 관심과 향토적 분위기가 서려 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보이는 산을 중심으로 해와 달이 대칭으로 떠 있는 모습은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조선시대 산수화 병풍과 유사하다. 이러한 도식을 두고 미술사학자들은 해와 달, 천상과 지상, 음과 양처럼 도가적 사상에 근원을 둔 화가의 동양적 우주관을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림 <산과 나무>처럼 수묵의 농담濃淡과 여백을 살린 먹그림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그린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나무와 까치>, <월목>처럼 나무 목 ‘木’ 자를 이용하여 마치 선비의 붓글씨를 형상화한 듯한 함축적이고 실험적인 그림도 왕왕 볼 수 있다.
그림 <풍경>은 장욱진의 그림이 조선의 회화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의 수렵도의 영향까지 받았음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준다. 그리고 까치, 소나무, 송아지 같은 도상과 자유로운 평면 구성은 화가가 옛 민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
장욱진, <월목>, 1963 한편 장욱진의 토착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그림을 보는 맛도 산수화를 감상하는 맛 못지않게 좋다.
그가 그린 <집>은 늘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사람들은 작은 흙집에 옹기종기 모여 창밖이나 문밖을 내다본다.
구들장을 덮고 흙을 발라서 방바닥을 만들고 불을 때야 하는 그림 속의 집을 보고 있자면 시멘트와 철근으로 지은 아파트에서 보일러 난방으로 생활하는 도시 사람들의 생활이란 게 얼마나 편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서로의 얼굴을 맞대며 살을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이들이 우리보다 더 따순 겨울을 나겠거니, 하는 생각도 든다.
장욱진, <집>, 1972 이들의 둥글넓적하고 까무스름하게 그을린 얼굴 또한 날렵한 턱선과 미백을 중시하는 요즘 사람들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달라 눈길을 끈다. 감자와 고구마 같이 투박한 얼굴. 그러나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참으로 사람 냄새나는 얼굴이다.
장욱진, <모기장>, 1956 그림 <모기장>의 인물은 팔깍지를 하고 방안에 드러누워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이다. 빈둥빈둥 거리는 폼이 참으로 팔자가 좋다. "나물밥 먹고 나서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는 공자의 말이 구현되면 딱 이 그림과 같지 않을까.1
소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늦은 점심을 해치우고 한낮의 열기가 좀 식으면 똥개 한 마리와 함께 앞산이나 올라갔다 올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도 싶다.
단순하게 내 것을 발산하고 사는 삶
나는 심플하다(...) 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나의 휴식이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장욱진).
장욱진, <자화상>, 1951 한국 화단에 그의 이름 석자를 크게 새긴 장욱진이지만, 그는 절대 크기로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참새나 강아지 같이 조그맣고 단순한 것들을 사랑한 그는 그림도 작게 그렸다. 100호가 작다 하며 방대한 크기의 캔버스에다 작업하길 즐기는 현대미술가들과는 달리 -대작을 폄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장욱진은 30호 이내의 캔버스나 도화지, 백자, 심지어 산책길에 주워 담은 조약돌 위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흔히들 장욱진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다고 하는 평을 하는데, 그는 "캔버스의 크기가 커지면 그림이 싱거워 화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하며 자신이 쏟아부을 수 있는 정직한 정력과 능력에만 몰입할 뿐 그 이상을 넘보는 욕심은 경계했다.
그래서일까, 욕심과 술수를 부리지 않은 장욱진의 그림은 방금 세수한 어린아이의 말간 얼굴처럼 깨끗하고 마음속에 묵혀둔 동심의 세계가 열리는 듯 순수하다.
장욱진의 삶도 그의 그림만큼이나 단순하고 천진했다.
그가 들려준 재미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가 통도사에 간 적이 있었다 한다. 어떤 암자 앞을 지나가던 중 어느 노스님 한분이 그를 보고는 대뜸 뭐 하는 사람이여 라고 물으셨단다. 그는 "나는 까치를 잘 그립니다"라고 대답했단다. 그러자 스님이 입산을 했더라면 일찍 도군이 됐을 것인데, 하더란다. 이 말에 그는 "그림 그리는 것도 같은 길입니다"라고 했단다.
단순하지만 참으로 명쾌하고 깊은 통찰이 엿보이는 말이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그가 자연과 벗하고 자연에 동화되는 생활을 하며 그린 그림은 단순히 낭만적인 목가적 풍경화가 아니라 '참되 나'를 찾아가는 구도에 이르는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장욱진의 자연관, 도가 철학의 심취, 자연 속의 은둔생활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도시의 소음과 번잡한 생활 속에 떠밀려 정신 놓고 사는 나 같은 도시 사람에게는 뚱딴지 같은 소리고 어림없는 일이다. 도시를 벗어난 전원생활, 산 좋고 물 좋은 지상낙원 같은 곳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 원하는 것에만 전념하고 사는 고집스러운 삶, 이 모두 기인 아니면 팔자 좋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꿈같은 얘기 아닌가.
그러나 "나는 심플하다"라는 장욱진의 말에는 분명 허세 따윈 제거된 진실이 있다. 이 단순한 말에 '사람 사는 길'에 대한 섬광 같은 진리의 번뜩임이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대수롭게 넘길 수가 없다.
장욱진, <가로수>, 1978 장욱진은 종종 "나는 무엇이냐, 너는 무엇이냐" 그러면서 캔버스를 엎어 놨다 제쳐 놨다 했다고 한다. 이 엉뚱함 속에 삼라만상의 지知의 헤아림과 자신의 영혼을 깨우고 직시하는 영성이 번뜩인다.
우리도 자신만의 고독한 섬에서 어떤 줄기찬 단순함을 통해 정직하고 순도 높은 '나만의 것'을 발산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예술가의 삶을 살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으나 나의 참된 모습, 자신의 심연을 파헤쳐 들어가 나와 만나보는 일은 꼭 예술가가 아니라도 우리가 노려볼 수 있는 일 아닌가.
과잉과 결핍의 스트레스를 제거한 단순함 속에서 '나'와 '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 우리에게도 더없이 필요하지 않을까.
1)김영나 외, 『장욱진: 화가의 예술과 사상』, 태학사, 2004.
[참고문헌]
김영나 외, 『장욱진: 화가의 예술과 사상』, 태학사, 2004.
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민음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