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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an 06. 2020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 그러나 별을 바라보다

-반 고흐; 고귀한 영혼-

불운한 화가의 사후 명성


"형은 살아있을 때 분명 성공을 거둘 거야"라는 동생 테오의 믿음에 찬 격려와는 달리 고흐는 생전에 화가로서의 영광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한 번은 저명한 미술평론가 알베르 오리에르가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지에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제목으로 고흐의 그림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평론을 쓴 일이 있고, 또 한 번은 안나 보흐라는 사람이 400프랑에 고흐의 그림 <붉은 포도밭>을 구매하였으나, 이 모두 단발적인 축포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마저도 고흐가 사망하기 불과 몇 개월 전에야 일어난 일이었고.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1889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지독히도 불운했다.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 빈센트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산된 아이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태생부터 죽은 형의 대리자로서 모정의 결핍을 느끼며 자랐다. 청년의 때에는 엄격한 청교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그도 목사가 되려고 했으나 번번이 목사고시에 낙방해 아버지의 인정을 얻지 못했다. 뒤늦게 화가라는 소명을 찾았으나 평생 가난하였고 고독하였으며 간질과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가 급기야는 총에 맞아 서른일곱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그의 삶은 설움 그 자체다. 하물며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조차 불분명하니 원통하기가 이를 데 없다.

 

 오늘날의 미술학계와 대중은 온갖 비극이란 비극의 요소는 한데 쏟아부은 듯한 그의 인생을 동정하며 그를 두고 '영혼의 예술가'이니. '태양의 예술가'이니 하며 추앙한다. 한 위대한 화가가 겪었던 모진 설움과 고통에 대한 일말의 보상이라도 하듯, 과거 사람들의 몰이해와 오해를 대신하여 속죄라도 하듯이. 

좌) 고흐, <고흐의 의자>, 우) <고갱의 의자>

 마치 관용을 베풀듯 보내는 우리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이제와 고흐가 듣는다면, 사후의 명성일망정 그가 위안을 얻을까? 고흐의 그림에 대한 조명보다 그의 고독과 정신착란을 이야기하는 데 특별한 재미를 느끼며, 상업적-예술적 필요에 따라 제멋대로 편집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인들을 그가 거북해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선량한 고흐는 우리들의 얄궂움을 너그러이 용서해 줄 것 같다. 생전에 자신의 그림에 늘 딴죽을 걸었고 동생 테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고흐 곁에 잠시 머물렀으나 결국엔 그를 떠나버린 폴 고갱에게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는 기행까지 벌이며- 변치 않는 우정을 간직한 고흐가 아니던가! 더욱이 총상을 맞아 -피살의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사흘을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만 남기고 떠난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소박한 사람들을 그리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고흐의 초기작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화가로 살고자 한 고흐의 열망이 정점에 섰을 때 탄생한 그림이다. 

 동굴같이 어두운 실내에 마치 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노란 등불 아래로 한 가정이 모여 앉아 이제 막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춥고 남루해 보이는 배경은 온기와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낭만주의 정취의 목가적인 농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고된 노동 끝에 날이 저물어서야 갖는 휴식이라 그런지 이들의 모습은 매우 지쳐 보인다. 식사메뉴라 해봐야 고작 삶은 감자와 데운 커피가 전부다.

 그림 왼편에 이 집안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의 아내와 함께 말없이 감자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 등을 돌리고 선 어린 딸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에 시선이 고정된 듯 보인다. 소녀의 오른편에 앉은 할머니는 식구들을 위해 컵에 커피를 가득 채우고 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지금 막 껍질을 벗긴 노란 감자를 건네고 있다. 

 고흐가 이 그림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림이 추하고 혼란스럽다며 불쾌해 했고 원근법이니 구도니 인체의 형태니 색감처리니 하며 그의 서투른 회화기법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고흐는 관용적인 회화기법의 능숙함을 판단치 말고 자신이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을 봐주길 바랬다. 고흐는 이런 심정을 담담하게 적어 동생 테오에게 편지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접시에 집어넣은 손으로 땅을 팠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했어. 따라서 이 그림은 육체노동과 그들이 음식을 얼마나 정직하게 벌었는지에 관해 말해 주지." 

 고흐는 화단의 냉대와 대중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라는 그의 소망은 정직한 노동 후에 일용할 양식을 먹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주목하게 했다. 화가의 따듯한 시선과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나눠먹는 사람들의 선량함이 하찮은 감자 한 덩어리를 금덩어리의 가치로 바꾸는 거룩한 위력을 만들어 낸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 

 어쩌면 천천히 오래 일한다는 게 숨은 열쇠인지도 모른다. 계속 살아남고 싶다면 더 열심히, 그리고 자만심 없이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부친 편지, 1888년 8월).

 

 고흐의 예술 인생은 8년으로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그는 무려 8백여 점의 유화작품과 2천여 점의 드로잉 습작을 남겼다. 죽기 전 80일간 오베르에 머물면서는 75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알려진 완성작의 수만 그렇고, 실패한 그림과 그린 후 파기했을 그림의 수까지 다 계산해 보면 이 근면한 화가는 거의 하루에 한 장 이상을 그린 셈이다.  

빈센트 반 고흐, 신발, 1886

 이처럼 지독한 노력파였던 고흐는 생전에 자신이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여겼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얼마 안 되는 금액을 빌리지도 못하다니.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라고 토로한 글은 노력의 무상함을 아프게 드러낸다.

 이러한 절망이 비단 고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위대한 화가 피사로, 고갱, 르누아르, 기요맹 역시 그림으로 생계를 잇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고흐는 더 순수하게 더 치열하게 작업에 임하는 것으로 분노와 불안으로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았다. 밥이 되지 않고, 권력이 되지 않고, 명예가 되지 않는 그림을 붙잡고서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려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
우리가 시련 속에서도 계속 버텨낼 수 있다면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흔히 이야기되는 사람들 속에 들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부친 편지, 1888).


 
노란색을 사랑한 고흐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집에 살면서 노란 해바라기를 즐겨 그렸다. 

 그의 어둡고 고독한 인생사를 생각해 봤을 때 그의 노란색에 대한 사랑은 너무 뜻밖이라 당혹스럽다가도, 또 같은 이유 때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햇살을 필요로 했으리라. 우울하고 음습한 기분을 말려줄 온기가, 열정의 불씨를 댕겨줄 에너지가.    


 분명 자연을 관찰하며 그린 그림임에도 그의 그림은 현실적이기보단 초현실적이다. 정물화는 부동성이 강조되기 마련인데 고흐의 해바라기는 신비한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역동성은 <별이 빛나는 밤>에서 절정을 이룬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하모니를 이루며 밤 하늘을 연주한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화염처럼 활활 타오르고 밤하늘의 별은 파도처럼 소용돌이치며 환상적인 선율을 낸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그림 중경에는 교회가 보인다. 집들 사이사이에서 홀로 우뚝 솟은 교회의 첨탑을 보고 있으니 마치 양 손바닥을 맞대고 기도하는 화가의 손처럼 보인다. 

 나는 잠시 보이는 것만을 추종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을 볼 줄 알았던 화가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읊조렸을 기도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나 자신으로서 사는 용기와 나 자신을 지키게 해달라는 희망을 구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학술논문이나 단행본을 뒤적거리며 양식사를 검토하려는 노력 대신에 고흐의 그림 앞에서 마음의 눈을 뜨고자 나름 애를 썼다. 생전에 처음 받아본 미술평론가의 호평에 고흐가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엔 맞지 않는다고 불편해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고흐가 진정 바란 것은 수사학적인 언어로 그림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정직한 감동을 느끼는 것이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림을 살펴보는 데 필요한 공부를 태만히 한 자의 변명치고는 너무 교활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이런 내 불성실함을 문제 삼지 않을 성싶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언제나 자신의 것을 후히 내주는 자연처럼, 그는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게 끝없이 다가가려 했고 그림으로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어 한 고귀한 영혼이었으니. 



[참고문헌

빈센트 반 고흐, 신성림 옮기고 엮음, 『반고흐, 영원의 편지』, 예담, 2017.

엘리사 맥킬런, 이영주 옮김, 『천재 예술가의 신화와 진실: 반 고흐』, 시공아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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