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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Oct 17. 2020

허허로움으로

하마터면 다 털어놓을 뻔했습니다. 당신이 묻지도 않은 말을. 감히 상상도 못 했을 일을.

나는 어쩌자고 그리도 선선히 털어놓을 작정이었을까요. 나의 무모함에 간담이 서늘하여 머리가 쭈뼛 섭니다. 정말이지 가까스로 컴퓨터 자판에서 손가락을 떼었답니다.   

돌이켜 생각하오면 이참에 나를 더 내보여 당신을 내게로 더 가까이 끌어당길 수도 있으련만.

그윽이 생각하오면 우리가 함께 그려야 할 그림은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여백인 까닭에.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빈틈없는 사이보다 나의 허술함과 당신의 불성실이 비슷한 무게로 조응하기를 나는 바랍니다. 우리 사이는 이 허허로움으로 더없이 충만해질 터이죠. 

가을밤의 공기가 퍽 쓸쓸합니다. 그러나 피부를 감아도는 적막감이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나는 좀 외로워야 당신이 더 좋습니다. 



김홍도, 소림명월도, 병진년화첩,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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