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양 Jul 14. 2020

밖으로

나갈 차비를 다 마치고도 문가에 서서 하염없이 망연해지는 것은 온종일 그치지 않는 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달려갈 곳이 있는 사람들과 기다릴 게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에서 나는 나를 어디에 세워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란하게 터지는 커피 볶는 소리와 소란스러운 대화들로 가득 찬 대기가 내 귀를 멍멍하게 합니다. 실은 도시의 소음보다 시끄러운 나의 고독이 아우성치는 탓입니다.

마주 보고 앉아 손뼉을 쳐가며 갸륵한 유대를 맺는 사람들. 전심으로 붙잡고 있던 나의 고요가 맥없이 허물어집니다. 나는 즐거운 사람들이 싫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겐 어떤 유혹이 넘실거리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는 끝없는 망상을 뇌까리며 타인의 갈망에 혀를 널름거려 봅니다.

아주 조금만 맛보아도 나는 금방 취할 것입니다. 마침내 같은 것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들뜬 기분에 사로잡힌다는 게 어떤 것일지 상상해 봅니다. 나는 나를 열고 흥분으로 미쳐 날뛰고 싶습니다. 희망이라는 최음제를 마시고서 여기저기에 부딪히고 헤프게 웃고 싶습니다.

마치 나의 정결한 의식을 치르듯 나를 둘러싼 외피를 한 겹 한 겹 벗어던지고 싶습니다.


언젠가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기어이 밖으로 불안한 발걸음을 땐 날,

누군가 내게 다가와 크게 호통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리 늦었냐고, 내가 너를 얼마나 오래 찾아다녔는지 아냐며 혼 빠지게 성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안도의 울음을 서럽게 쏟고 당신은 멋쩍어하며 말없이 내게 우산을 씌워줬으면 좋겠습니다.



Has it Stopped Raining? , Laurits Andersen Ring, 1922.


매거진의 이전글 허허로움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