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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an 12. 2021

죽음에 대한 예의

-구스타프 쿠르베; 모든 이의 죽음은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자그마치 가로 6.60미터, 세로 3.15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크기의 그림 한 점이 파리의 화단을 떠들썩하게 했다. 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오르낭의 매장>의 이야기다. 

 쿠르베는 <화가의 작업실>이란 그림과 이 그림을 만국박람회에 출품했으나 심의회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성인도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죽음을 회화의 주제로 삼고 거기다 종교의 제단화를 연상케 할 만큼의 웅장한 스케일로 그린 점은 심사위원들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루이 블랑과 프루동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 예술을 주창하고 몇 차례의 혁명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도 했으나 파리의 화단은 여전히 다비드식의 역사화풍 즉 중요한 인물을 화면 중앙에 배치하는 중앙집중식 구도에 익숙했다. 그런데 <오르낭의 매장>은 50명 가량의 인물들이 등신대의 크기로 화면을 가로 지르며 길게 늘어서 있다. 조문객 대다수는 노동자이며 이들의 모습은 투박하고 남루하다. 장례의 집행관인 교회지기조차 붉은 코에 취기마저 있는 듯한 얼굴로 엄숙함과 권위라곤 전연 찾아 볼 수 없다. 모두가 동일한 비중을 차지하며 아무런 미화도 없다. 가장 신성해야 할 영걸식이 엄숙함도 경건한 분위기도 없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인 사건의 하나로 그려졌을 뿐이다.1  이러한 모습은 아카데미의 미적 취향을 모독하는 것이자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과 모든 계층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프롤레탈리트의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일종의 사회전복의 의도로 읽힌 것이다.

 무엇보다도 종교를 우롱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아무리 지난날의 교회가 가진 영광에 비할 데가 아니라고는 하나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인생의 중추적인 힘을 교회에 두고 있었다. 하여 전통적인 종교화를 창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미술사에서 근대미술의 포문을 연 화가로 손꼽히는 마네의 경우도 딱히 신앙적 차원에서는 아니었으나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그림을 몇 점 남긴 바 있다.

 

구스타프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1851


 그러나 쿠르베는 '매장'이라는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주제를 택하고선 십자가 이외에는 기독교적 도상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계의 헤게모니에 반하여 새로운 회화양식을 제시하였다. "과거의 도식적이고 인위적인 관습을 경험으로 얻은 동시대적 사실의 객관적인 묘사와 조화시키려"(알렝 드 레리) 했다. 천사를 그려달라는 주문에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릴 수가 없다"고 딱잘라 거절한 일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디 이 뿐인가, 어느 젊은 미술학도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려서 갖고 왔을 때 쿠르베는 그 청년에게 예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청년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아버지의 초상화나 그리라"라고 충고했다고 한다.2  쿠르베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자유주의적이고 반교권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오르낭의 매장>은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쿠르베가 갖는 종교에 대한 비판의식과 반성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3

  종교적 신성과 이데아의 세계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현실세계를 끌어오는 일. 쿠르베가 제시한 새로운 회화양식은 <오르낭의 매장>을 논할 때 빈번히 거론되는 엘 그레코의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과 비교해 볼 때 더욱 확연해진다.

엘 그레코,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1586–1588

 엘 그레코가 표현한 죽음의 리얼리티는 땅에서의 매장과 하늘에서의 신격화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죽음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이며 동시에 현실세계가 내세=본래의 세계에로 융합하는 것이다. 즉 엘 그레코는 신의 영역이 자연의 영역으로 교차되고 자연이 초자연적 영역으로 승화되고 있는 기적을 그림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구름을 뚫고 비치는 빛 속에서 순교의 왕관을 쓰고 있는 천사와 예수"(린다 노클린)의 환영적 이미지는 동시대인들의 이성에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성경을 '입증할 수 없는 사실들의 나열'(매튜 아널드)로 보았고, 그러한 견지에서 엘 그레코의 그림 속 귀족 조문객들과 화려한 제복을 입은 성자들은 그 사건의 증인으로서 참여하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일고 지적 교양이 증대되었다고는 하나 사회에 팽배한 종교의식과 개인의 경건주의는 여전히 중세-낭만주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쿠르베의 리얼리티는 <오르낭의 매장>에서 보다시피 매장의 세속적인 의미만이 강조될 뿐이다. 매장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상관없으며, 내세와 어떤 관계가 있든 상관없다. 매장되고 있는 장소, 그리고 매장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의 성격만이 이 그림의 요점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회화적 리얼리즘이며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4

 그럼에도 쿠르베는 이 작품에서 매장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다. 쿠르베와 친분이 두터웠던 사실주의 화가 프루동의 말대로 쿠르베는 죽음을 그저 기독교의 '장엄한 시'로 장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림에서 목사, 코가 빨간 교구 관리인, 매력적인 사제 등 교회를 상징하는 것들은 쿠르베의 아버지, 누이 오르낭의 시장, 잘생긴 개 등을 포함한 이 사건의 참여자들보다 더 시적이지도 않고 덜 산문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쿠르베에게 있어 인간의 죽음은 여전히 동물의 죽음 '이상의 것'이었다. '이상의 것'이란 의미는 <오르낭의 매장>에서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로 표현되고 있다. 즉 인간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특정 공동체의 한 일원이 죽은 것을 애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초월적, 영웅적 의미도 아니고 아름답고 로맨틱한 비애감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5

 현실의 구체적인 경험과 사건과 풍속과 모습을 직면하고 포착하는 것, 관념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일상성과 사실성으로 복귀하는 것,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의 주목받지 못한 인간성과 아름다움을 찾아 주는 것이 쿠르베와 그를 위시한 리얼리스트들이 추구한 예술세계였다. '예술은 그 시대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이 밑바탕을 이루었으며, "성실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류계층과 고난을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하찮은 일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할 것을 고집했다."6


 재작년 가을,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나는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을 떠올렸다. 할머니의 장례는 평범하고 간소했다. 신성하고 경건한 의식이라든가 종교적 황홀경은 없었다. 별달리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었던 지라 할머니의 죽음을 기리는 어느 문장가의 성실한 애도문 따위도 없었다. "오직 피부 아래서 심장이 뛰듯이 아무런 욕심 없이"(에밀 졸라) 다만 열심히 살다 간 할머니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에 묻혔고, 그 주위로 할머니가 자신전 생애를 바쳐 키운 자식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위대한 일을 없는 보통 인간의 죽음. 만일 평범하게 살다 간 내 가족과 이웃의 인생이 예수와 성인의 인생만큼이나 값진 의미가 있다고 피력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일까?

 할머니는 결코 위대한 인물은 아니었다. 살면서 중요한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기 식솔들 먹여 살리고 억척스레 자식들 교육시킨 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미쳐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정스레 말은 못 걸어도 손녀 줄라고 쌈짓돈 허는 건 일도 아니었던 사람이었다. 예수도 부처도 잘 몰랐지만 신은 성전이나 절간에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찾는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사람이었다. 풍족하게는 못살았어도 지루하지는 않게 살다 간 인생이었다.

 그러므로 할머니의 죽음은 내 기억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 진실함과 굳건함이라는 이름으로.

 



1) 박은영,「귀스타프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에 나타난 리얼리즘」, 미술사연구회 제13호(207~231쪽), 1999.

2) 린다 노클린, 권원순 옮김,『리얼리즘』, 미진사, 1997, 90쪽.

3) 박은영, 위의 글, 216쪽.

4) 린다 노클린, 위의 글, 90쪽.

5) 위의 글, 92쪽.

6) 위의 글, 155쪽.


[참고문헌]

린다 노클린, 권원순 옮김,『리얼리즘』, 미진사, 1997.

박은영,「귀스타프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에 나타난 리얼리즘」, 미술사연구회 제13호(207~231쪽), 1999.

이재은,「구스타프 부르베의 모순: <화가의 작업실>(1855)을 중심으로」, 미술이론과 현장

제11호(121~139쪽),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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