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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만든, 3월

예술노동자

by 고효경

감정노동자가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예술노동자는 타인의 감정을 대신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 아닐까.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를 기억할 것이다. 개미는 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했다. 베짱이는 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쳤다. 겨울이 오자 개미는 따뜻한 방에서 지냈고, 베짱이는 굶주렸다. 중학교 시절, 나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다. 친구들과 함께 방과 후 교실 한구석에서 작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멜로디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꿈을 키웠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친구 중 몇 명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음악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여러 번 설득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건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뿐이었다. 음악이 꿈이라고 말할 때마다 깊은 한숨이 따라왔고, 결국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눈에 음악은 성실해 보이지 않았던 걸까? 나는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학생의 신분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한동안 음악과 멀어졌지만, 성인이 된 후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 가끔 생각한다. 베짱이가 나무 아래에서 연주한 기타 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노래는 하루아침에 손끝에서 흘러나온 것일까. 아니면, 개미만큼이나 손을 단련하고, 귀를 열고, 온몸으로 소리를 익혀야 했던 걸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그는 줄을 튕기고 리듬을 쌓으며, 자신의 감정을 조각내듯 음악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어쩌면 베짱이는 개미처럼 땀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흘린 땀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노동은 손끝에 굳은살을 남긴다. 어떤 노동은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예술노동은 다르다. 그것은 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마모시킨다. 하나의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 처음에는 작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 멜로디를 붙잡아 단어를 얹고, 문장을 만들고, 한 줄 한 줄 가사를 정리한다. 그러나 멜로디와 가사만으로 곡이 완성되지 않는다. 코드와 화성을 다듬고, 곡의 구조를 짜고, 악기 배치를 고민한다. 소리를 쌓았다가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한다. 악보 위의 점들은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다듬어진다.

녹음실에 들어가면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곡이라도, 마이크 앞에서는 다시 낯설어진다. 숨을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불러야 하는지, 몇 번이고 녹음을 반복한다. 음 하나가 삐끗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고, 때로는 한 곡에 일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녹음이 끝나면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이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모여 소리를 다듬는다. 악기의 볼륨을 조절하고, 목소리의 질감을 살리고, 음 하나하나의 균형을 맞춘다. 그렇게 해서야 한 곡이 완성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앨범을 만들기 위해 여러 곡을 모으고, 트랙을 정리하고, 재킷 디자인을 고민하고, 발매 일정을 조율한다.

그리고 공연. 노래를 부르기 위해 연주자들과 모여 합주를 한다. 공연 전날까지 몇 날 며칠을 연습한다. 무대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습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밀려온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고, 그 순간은 모든 것이 보상받는 듯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불이 꺼지면, 다시 혼자가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게 왜 노동이냐고.

그러나 좋아서 한다고 해서, 그 일이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노동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않는다. 예술도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세상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시대가 변했고, K-POP의 위상은 높아졌다. 그러나 모든 음악이 주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무대 뒤, 빛을 받지 못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있다. 그들은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스스로 곡을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노동은 산업의 일부로 환산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베짱이는 정말 빈둥거렸던 걸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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