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
어느 날 문득, 내 삶에서 사라지는 사람을 떠올린 적 있는가. 아무런 설명 없이 연락이 끊기고, 흔적마저 증발해 버린 이별.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폭풍이었다. 나는 한 남자와 이별했다. 예고도, 이유도 없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고, 거부당한 감각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했고,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며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과 초조함 속에 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혹시 오는 길에 사고가 난 건 아닐까? 어제 두통약을 먹은 것 같은데, 혹시 약 기운이 너무 강해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걱정은 점점 커졌고, 기다림 속에서 내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은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 땀이 차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10분, 20분, 1시간… 시간이 흘러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슴이 조여왔다. 혹시라도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계속해서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지만, 알림은 뜨지 않았다. 주변의 소음은 점점 멀어지고, 내 귀에는 심장의 박동 소리만이 울렸다.
3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나타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날, 집에서 하루 종일 잤어."
그의 무심한 말은 내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내가 느꼈던 걱정과 불안은 그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 나의 시간과 감정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날 이후, 그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너는 코드를 그것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곡을 쓰면서 먹고살았어?"
그의 말은 날카롭게 내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나는 우울해졌다. '내가 예민한 걸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가 좋았던 건, 말과 태도가 겸손했고 그와 함께라면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내가 만든 곡들에 대해 그의 조언을 듣는 시간은 소중했고, 그는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내게 그는 매일 밤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를 자장가처럼 연주하며 나를 재워주었다. 그는 버클리에서 공부할 때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는데, 작곡 수업에서 김동률이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며 그와 함께했던 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나는 김동률의 음악을 좋아했기에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그가 전해주는 버클리의 풍경과 분위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가 경험한 무대와 연습실, 동료들과의 음악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아마도 그래서 그에게 더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음악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를 더욱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 속에는 그 시절의 감성이 녹아 있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잠 못 드는 밤, 내 불안 속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가 연주한 ‘오래된 노래’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의 불면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억 속으로 도망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애틋한 다정함으로 오해했고, 그의 감정선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었다.
그가 유학 생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는 내게 영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스스로를 즐겼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나와 그의 감정을 나눠 갖는 것이라 착각했고, 그의 음악이 나를 위한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그의 추억 속 그림자였을 뿐, 더는 그의 시선 속에서 작아질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는 눈물을 보이며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고, 나는 또 바보처럼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잠수를 탔다. 그와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의 흔적을 지우며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남긴 공허함은 내 안에 깊은 피로를 남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마치 부서진 조각을 하나씩 맞추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관계가 끝난 지 오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나타났다. 새벽마다 그의 메시지는 목적 없이 반복되었고, 어느새 나는 그 패턴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그의 습관이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주 앉은 날, 그는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 다시 만나자."
그는 관계를 통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 했을 뿐,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순간적인 위안을 얻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로 했다. 1년 후,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잘 지내니?"
기억에서 지워낸 이름, 그의 메시지였다. 그는 다시 그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려 했고, 그의 외로움은 그가 보낸 문자에서도 묻어났다.
어디선가 피어난 꽃들이 밤공기 속에서도 희미한 향을 뿜어내던 4월은 따뜻하면서도 싸늘했고, 빛나면서도 가혹했다. 나는 그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읽고 차단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보낸 마지막 답변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잔인한 4월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의 메시지는 나의 새벽을 두드리지 못하고, 그의 외로움은 나의 시간을 흐트지 못한다. 그의 그리움을 더는 기다리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한때 그의 말과 눈빛 속에서 함께 걷고 싶었던 그를 향했던 내 마음도 4월의 봄바람에 흩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