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봄에도 피어난다.
4월의 여의도는 꽃으로 가득했다. 윤중로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계절, 병실 창문 너머로도 봄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병실의 공기는 답답할 만큼 고요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복수를 빼내는 치료를 받고 계셨다. 복수를 빼는 과정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무게감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엄마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주삿바늘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끝은 길고 투명한 관으로 이어졌다.
관은 호스에 연결된 투명한 병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천천히 복수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의 복수는 이미 고통의 상징이 된 지 오래였다. 호스에 연결된 병은 금세 복수로 가득 찼고, 나는 그 병을 조심스레 교체해야 했다. 병에 물이 가득 차면 떼어내 준비된 빈 병으로 호스를 연결했다. 호스 끝에서 액체가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안심했지만, 내내 손끝이 떨렸다. 혹시 호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액체가 다시 역류해 엄마의 배로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뒤따랐다. 간호사가 들어와 상황을 점검하고 방향을 알려주곤 했지만, 나는 긴장 속에서도 이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링거병 하나가 복수로 가득 차는 데에는 15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엄마의 복부에 쌓여 있던 액체가 천천히 병으로 옮겨지면서 엄마는 숨을 조금 더 깊게 들이마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안도에 불과했다. 나는 복수로 가득 찬 링거병을 비웠다. 투명한 병 속의 노르스름한 액체는 무겁고 축축한 삶의 흔적 같았다. 복수를 빼는 과정은 엄마에게 필요한 치료였지만, 동시에 엄마의 몸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병을 비울 때마다 엄마의 체력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복부는 이미 몇 차례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나가기를 반복해 검붉은 멍으로 덮여 있었다. 엄마는 시종일관 고통을 참아내는 표정이었지만, 숨소리 하나하나가 피로와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참 예쁘다." 엄마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벚꽃 보러 갈래?" 내가 물었고,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병원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의사들이 회진 중인 시간을 확인하고, 휠체어를 준비했다. 엄마의 환자복은 스카프와 카디건으로 감췄고, 엄마와 나는 복도를 조심스레 지나 휠체어를 두고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동안 엄마는 손잡이를 붙잡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숨이 가빠지던 엄마의 모습은 괴로워 보였지만, 눈빛엔 설렘이 묻어 있었다. 1층에 도착하자 차가운 봄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병원 밖의 풍경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윤중로의 벚꽃은 한눈에 들어왔고, 거리는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꽃잎을 잡으려 뛰어다녔고, 커플들은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엄마는 벤치에 앉아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셨다.
"정말. 아름답다." 엄마는 감동에 겨운 듯 속삭이셨다. 꽃잎이 머리 위로 떨어지며 바람에 날렸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순간,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도 끝이 다가왔다.
"엄마, 힘들어 보이는데 이제 갈까?" 내가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운 눈빛으로 벚꽃을 바라보았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벚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눈으로 사진을 찍듯이, 벚꽃을 눈에 새기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마지막 꽃구경이라고 생각하신 걸까? 벚꽃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가지를 잡아 코에 가까이하고 향을 맡으셨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스피커에서 환자를 찾는 방송이 병원 공간을 울렸다.
"환자를 찾습니다, " 엄마의 이름이 반복되어 들렸다.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작게 웃으며 말했다. "들켰네." 엄마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은 장난스러웠다. 나는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눌렀다. 창밖으로 윤중로의 벚꽃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엄마는 작게 속삭였다. "그래도 오늘 참 좋았어." 그 말은 나에게 영원히 기억될 마지막 선물 같았다.
그 후 매년 4월이 오면, 나는 윤중로를 걷는다.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엄마와 함께 걸었던 그 길 위로 그리움을 삼킨다. 바람이 불어 내 손바닥 위로 내려앉은 꽃잎을 엄마의 손을 잡듯이 조심스레 감쌌다.
"엄마, 올해도 벚꽃이 예쁘게 피었어."
한 걸음 한 걸음, 꽃잎 사이를 지나며 나는 마치 엄마가 내 옆에 있는 듯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