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래된 온기, 5월

어버이날

by 고효경

엄마가 숨을 쉬면 나도 숨을 쉬었고, 엄마가 눈물을 삼키면 나도 눈을 감았다. 자궁 속은 깊고 어두웠지만, 그 안은 따뜻하고 안전했다. 양수 속에서 천천히 손을 뻗고, 발을 구부렸다. 엄마의 심장 소리는 바다처럼 규칙적이었고, 나는 그 파동에 흔들렸다.


어느 날, 엄마의 심장은 조금 빠르게 뛰었고, 호흡은 불규칙했다. 나는 엄마의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산부인과병원 문 앞에 줄을 선 엄마의 배 속에서 나는 웅크려 있었다.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는 걸까? 나는 그저 엄마의 손길에 가까이 닿기를 기다렸다.


오월의 햇살은 이른 여름의 열기처럼 엄마의 온몸을 덮었다. 땀에 젖은 엄마의 손이 나를 감싸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 손길이 나를 밀어내려는 것인지, 붙들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 작은 나의 움직임이 엄마의 마음을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누군가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산모가 이대로 계속 서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듯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양수 속에서 미약하게 몸을 웅크렸다.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것이 따뜻한 안도의 손길이었는지, 혹은 떨리는 망설임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를 놓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산달이 많이 남아 아직 출산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양수가 터졌다. 준비되지 않은 순간,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나는 세상으로 밀려 나왔다. 나는 죽음을 비켜 세상으로 나왔다. 자궁은 비좁고 따뜻한 곳이었을 테니, 갑자기 경계 없이 빛 가운데로 미끄러져 나온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울고 있는 나를 받아 안았다.


나는 악착같이 엄마 젖을 5살 때까지 빨았다고 한다. 내가 젖을 떼고 쌀죽과 밥을 먹으며 성장하는 동안, 기관지와 장이 약해 밤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때마다 살아났다고 했다. 2남 2녀의 끝물로 태어나 시원치 않게 세상에 나왔다고 엄마는 종종 말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가끔 집안을 살뜰하게 챙기는 나를 보면서 "널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니." 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농담처럼 받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공부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가고. 나는 그렇게 못 살았으니, 내 딸은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 옷은 계절마다 철철히 옷장에 넣어두고 입어. 봄에는 산들산들한 원피스를 입으며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고, 여름에는 하늘하늘한 시폰 블라우스로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을 품어. 가을이면 클래식한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여유를 갖고, 겨울이면 포근한 코트로 따뜻하게 감싸라. 옷을 고르듯, 네 마음도 계절에 맞게 가꾸며,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네 삶을 자유롭게 살아."


나는 가끔 엄마의 엄마에 대해 물었다. "엄마도 나처럼 할머니를 자주 안았어?" 엄마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별로 없어. 하지만 네가 나를 안아주듯, 나도 가끔은 할머니를 안았을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명절이면 나는 엄마 곁에서 음식을 배웠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나물 다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전을 부치며 반죽을 적당히 올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꼬치 산적을 만들 때는 갖가지 야채를 가지런히 썰어 꽂이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았다. 동그랑땡을 빚을 때면 반죽을 둥글게 빚어가며 손끝에서 차곡차곡 명절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엄마는 시장에 갈 때면, 나보다 아홉 살 많은 언니가 있었지만, 늘 나를 데리고 시장에 다녔다. 어묵가게 아줌마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장을 돕는 내가 예뻤는지, 매번 어묵을 무료로 주곤 했다. 뜨거운 국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한 손에 꼬치를 쥔 채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감정을 쉽게 내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깊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엄마는, 마지막 순간에도 마치 삶의 무게를 조용히 감싸 안으려는 듯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려 했지만, 세월이 남긴 흔적은 눈가의 미세한 떨림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 표정 속에서 말하지 않은 많은 감정들을 읽으려 애썼다. 이제 나는 엄마의 나이에 닿아 있다. 그녀가 나를 품었던 나이. 그리고 이제, 살아보지 않은 엄마의 시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엄마가 나를 품고 버텨낸 날.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막막함, 선택의 무게,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많은 감정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을 것이다. 낙태하려다 낳았던 나를 처음 안았던 그 순간,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후회였을까? 안도였을까? 내가 태어난 날은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나는 엄마에게 선물이었을까? 눈물이었을까? 엄마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묻지 못했던 질문이, 이제야 목 끝에 걸려 맴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잔인한 그리움,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