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의 재발견

동태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by 효리브

동태 전을 부치다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다. 계란물에 듬뿍 적신 동태살을 잘 달궈진 팬 위에 올렸는데 동태에 숨어있던 물기가 촤악 퍼져 나오고 있었다. 해동 후에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는다고 닦았는데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껏 축축해진 동태 전을 뒤집어보려다 결국 다 바스러져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거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가 아닌데…


“동태전만 있는 건 아니잖아?”


하루 세끼를 모두 요리하는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동태의 재발견이 시작됐다.






동태 전 볶음밥

이미 바스러질 대로 바스러진 동태 전을 하나뿐인 나무주걱으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기름을 뿌리고 당근을 볶다가 마침 남아 있던 찬밥을 함께 볶아줬다. 간은 소금 후추만으로 하고 마지막에 냉장고에 남은 루꼴라를 듬성듬성 잘라 넣고 불을 껐다. 계란코팅이 되어 더욱 고소해진 생선 조각들에 찬밥이 더해져 고슬고슬 감칠맛 폭발 볶음밥이 탄생했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저탄고지를 비롯한 장 치유 식단을 시도한 지 6개월, 매일 공부하며 쓰고 있던 식단 일기에 나는 이렇게 큼지막하게 쓴 적이 있다.


따뜻, 신선, 심플


좋다는 식단들은 하나같이 너무 극단적이었고 나는 적응할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이 세 가지 단어는 마치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처럼 항상 머릿속에 맴돌았다.


장을 위해

신선한 식재료로

심플하게 요리하고

따뜻하게 먹을 것


그것이 이 간소하게 만든 주방에서의 나의 할 일이었다. 볶음밥 간이 소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지만.




레몬 동태찜

밥솥도 전자레인지도 없는 나의 주방에도 전자제품은 있다.


하나는 물을 끓여 마실 전기포트

하나는 전기찜기


본격적으로 당근을 식단에 도입할 때는 볶은 당근보다 찐 당근을 많이 먹었다. 거의 이유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은 GAPS(장 치유 식단) 때문에 소화력이 너무 약해진 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찜기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해동한 동태살에 물기를 제거하고 소금 후추로만 간을 한 뒤 레몬즙을 뿌려 찜기에 찐다. 그러면 동태의 담백한 살을 온전히 즐기면서도 레몬즙의 상큼함이 동태의 옅은 비린맛까지 잡아준다.


동태에는 지방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족한 지방을 요리가 끝난 후 뿌리는 올리브 오일로 대체하는 편이다.


생각보다 흰 살 생선의 매력은 쪄 먹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북어 없는 동태 북엇국

말린 명태는 북어

냉동 명태는 동태


같은 생선이 이렇게나 다른 사람인 척하고 있었다니. 어쨌든 말리는 과정에서 생선의 단백질은 응축되어 동태보다 북어에 훨씬 더 많은 단백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을 생각할 때는 항상 과유불급을 조심해야 한다. 건강을 생각해서 고른 ’더‘ 건강한 것들이 오히려 자극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자극을 줄 수 있는 발효식품들도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기존의 북엇국이 쫄깃한 북어 식감과 깊은 국물맛이 매력이라면 동태와 양파, 약간의 당근을 올리브유에 볶아서 계란물을 띄운 동태 북엇국은 극강의 부드러움과 완전한 저자극의 기쁨을 선사한다.


국물은 담백하면서도 기름에 볶은 채소의 기분 좋은 달큰함이 있다. 동태의 식감은 아주 부드러워서 목

넘김이 좋아 속이 불편한 날 먹어도 정말 좋다.


식단을 짜다가 100g당 동태살과 돼지고기의 단백질을 비교하는데 고작 3g 돼지고기가 더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고기가 물릴 때, 건강한 지방에 동태살을 이용한 요리들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다음번엔 성공한 밀가루 없는 동태전과 채소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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