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뿌리채소를 먹습니다

간소한 주방에서의 식단 이야기

by 효리브

내가 주방을 간소하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주방과 냉장고, 싱크대 선반엔 각종 조리도구, 식재료, 가공식품(특히 라면)들로 가득했다.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하면서도 한 번 고삐가 풀리면 조절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한 번에 변했던 건 아니다. 가장 먼저 주방에서 밀가루로 된 제품을 모두 없애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라면을 이제는 먹지 않은 지 1년 정도 됐다.


그리고 신경 쓴 건 식재료와 요리법이었는데 본격적으로 내 건강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심플하게 먹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주방은 더 이상 더하는 주방이 아닌


덜어내는 주방으로 변하게 되었다.








나무 주걱으로도 계란 프라이를 별 탈 없이 뒤집을 수 있다면 굳이 뒤집개를 살 필요가 없다.


요즘은 이런 것도 나온다고? 싶은 제품들이 천 원 이천 원이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물건 모으기 제격인 시대가 된 것 같다. 나도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물건을 쥐었다 놨다를 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굳이 필요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서랍엔 좋은 칼 하나, 국자 하나, 가위 하나, 나무 주걱 하나 그리고 조리용 젓가락을 넣는다. 그 단조로움이 무엇을 골라 요리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작은 채칼판과 감자칼은 매일 뿌리채소를 먹는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나에겐 뿌리채소를 손질하는 시간이 참 특별하다. 그 시간만큼은 조금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최근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다가 귀여운 당근모양의 감자칼을 사 왔다. 괜히 한 번 씩 미소 짓게 된다.


채칼판은 매일 당근을 채 썰 때 사용해서 이제는 주황색 물이 들기도 했다. 나는 재료를 미리 다 썰어두는 프렙을 하지 않는다. 매 끼니 먹을 만큼 바로 손질하고 정리해 두는 편이다. 그럼 굳이 많은 소분 용기를 사지 않아도 된다.


나는 소분 용기가 딱 3개 있는데 모두 유리로 되어 있고, 하나는 흰 살 생선 전용, 나머지 두 개는 냄비밥을 짓기 전 미리 쌀을 불려두거나 남은 식재료를 보관할 때 쓴다.


양념은 올리브유, 천일염, 후추만 쓰고, 매 끼니 만든 음식을 다 먹기 때문에 소분 용기가 음식의 기름이나 양념으로 더러워지는 일 또한 없다.


정말로 필요한 것만 남기다 보면

삶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식단의 오작교, 뿌리채소

평생의 숙제 아토피 그리고 2년 전 자가면역질환을 진단받으면서 영양과 면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면역 질환에는 채식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깊게 공부하면 할수록 육식 위주의 식단을 권고하는 내용들이 많아 의외라고 생각했다.


육식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염증의 주범은 고기의 지방이 아니라 정제 탄수화물에 있다는 논리였다.


그동안 나의 식습관을 돌이켜보면 가끔 고기를 먹고, 그것보다 자주 해산물을 먹으며, 다양한 채소와 면, 고봉밥을 즐겼다.


그랬던 내가 카니보어 같은 완전한 동물성 식품만 먹는 식단이라니, 해보고 싶어도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처음 식단을 시도한 순서는 이랬다.

밀가루를 끊기 - 단 음식 끊기 - 저탄고지 - 소스 끊기



저탄고지를 시작한 이후로는 방향이 명확해졌다.


1.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

(뿌리채소 활용하기)


2. 동물성 단백질 소화 능력을 키우는 것

(한 번에 많이 먹지 말고 나눠서 먹기)



저탄고지 실험을 통해 나는 많은 양의 동물성 단백질을 소화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닭가슴살을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여드름이 나거나, 고기 식단을 계속하면 목이 꽉 막힌 느낌과 변비, 생리를 건너뛰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제 탄수화물만 줄이니 에너지가 부족했다. 카니보어는 고사하고 저탄고지를 시도하기 위해 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정제 탄수화물은 줄이면서도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뿌리채소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고 나한텐 특히 당근이 가장 잘 맞았다.


식단 기록을 통해 나에게 잘 맞는 식재료는 무엇이고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건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탄단지를 분배해서 먹어야 지금의 상태에 알맞은지 등을 하나씩 알아갈 수 있었다.


어두운 터널 같은 길에 매일의 기록으로

조금씩 옅은 햇살이 들이치는 기분이었다.




뿌리채소의 효능

감자 고구마 당근 무

현재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내가 매일 아침 챙겨 먹는 것들은 이렇다.


미지근한 소금물 한 잔

올리브오일과 천일염으로 볶은 당근

계란 프라이 1개


(컨디션에 따라 계란 1개를 추가하거나

쌀밥/고구마/감자를 추가하기도 한다)


뿌리채소는 천천히 흡수되는 탄수화물로 혈당의 급등 없이 우리 몸에 지속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또한 산화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만성 염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혈액에도 좋아 특히 혈액을 만드는 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 주고 혈액 순환도 돕는다.


나는 주로 점심과 저녁에 밥 조금에 당근이나 고구마를 추가해 탄수화물을 채우는 편이다. 뿌리채소의 포만감 덕분에 정제 탄수화물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나는 6개월 넘게 매일 당근을 먹으면서 안색과 생리혈이 맑아진 것을 몸소 체감하기도 했다.


카니보어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모든 곡류와 채소 역시 먹지 말아야 한다. 또 완전한 카니보어를 시도할 수 있게 됐을 때, 그게 또 뚜렷한 자가면역질환의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또다시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될 테다.


자가면역질환은 완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도하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천천히 가더라도 부딪혀보고 싶다. 그동안 몸이 계속 아팠다는 건,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것을 해봐야 변화를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오늘 새벽 배송을 받았다.

고기, 생선, 쌀, 당근, 양파

주방엔 7개의 조리도구가 전부이지만

나의 귀여운 당근 감자칼과 함께

또 변화할 내일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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