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넷 ep.03
“아이들을 낳고 나면 어떤 게 가장 하고 싶어?”
동료 N언니가 물었다.
일단 얼음을 잔뜩 넣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 새로 나온 마라 엽떡을 오리지널 맵기로 먹거 남편이 사다 논 위스키로 하이볼을 말아먹어야지.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하루에 몇 잔이고 커피를 마시던 나는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서 그만 마시기 시작했다. 시험관 시술과 임신 기간 중에 하루 적정량의 카페인을 먹어도 무관하지만 괜한 찝찝함을 피하고 싶어 디카페인도 입에 대지 않았다. 달고 살던 커피를 마시지 않자 주변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니 카페에 가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단음료는 마시기 싫어 차를 마시려 하니 카페인 없는 차는 종류도 한정적이었다. 와 빨리 아기 낳아서 꼭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야겠다.
막상 낳고 보니,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임신 기간 때보다 더 줄어있었다. 커피도 매운 것도 시원한 음료도 맥주도 유축 때문에 먹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일찍 태어나자마자 니큐로 간 쌍둥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모유를 유축해 나르는 일 밖에 없었다.
초유가 중요하다해서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유축기를 대여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은 참 신기하다. 예정일이 되지 않아도 아기를 낳자 가슴에서 젖이 돌았다. 젖몸살은 없었지만 젖이 비워지면 찌르르하고 차는 게 너무 신기했다. 초유는 꼭 먹이고 싶어 안 나오는 젖을 유축기로 무식하게 짜냈다.
그렇게 모유를 나르던 중 담당 교수님과 면담 시간에 첫째가 배에 가스가 많이 찬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소화기간이 미숙해 음식을 가려주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늘, 양파, 양배추, 우유, 견과류, 무는 가급적 비해서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세상에 한국음식에 마늘이 안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있담? 하물며 물같이 먹고 있은 미역국에도 마늘은 들어가는데 말이다.
혼자 찾아보니 발효되지 않은 콩도 좋지 안 다해 하루에 하나씩 먹던 두유도 끊었다. 너무 기름진 걸 많이 먹으면 유선이 막힌다 해서 고기도 먹을 수 없었다. 케이크나 빵, 밀가루 모두 모유에는 좋지 않았다. 임신 전보다 나는 먹을 수 있는 게 줄어들었다. 이 시기에 먹은 건 미역국과 쌀밥이 전부였다.
엄마랑 통화하면서 입버릇같이 말했다. 왜 이런 건 알려주지 않아? 아기 낳기만을 기다렸는데 말이다.
유축은 아기 퇴원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하루에 6-8번 가슴에서 젖을 짜냈다. 매일같이 오는 아기들 몸무게와 수유량에 가슴이 철렁였다. 개미 콧구멍같이 수유량이 늘면 너무나도 기뻤다. 치료적 금식이 떠있는 날이면 하루종일 우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축뿐이었다.
아기들 태어나면 분유 먹일 거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아이를 낳고 내 소원은 두 아가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었다. 퇴원해서 젖을 물릴 수 있게 매일매일 유축을 했다. 50여 일이 지나자 젖이 잘 안 돌았다. 나 혼자 조급해 유축기 단계를 올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월요일과 목요일이 되면 기분이 좋았다. 일주일 중 두 번 아가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었다. 월요일이 기다려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인큐베이터 너머로 만나고 오지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30분이었다. 둘째가 산소를 뗀 어느 날 인큐베이터 뚜껑이 열려 있어 처음으로 마주한 날이 있었다. 작지만 오동통한 볼. 만져보고 싶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한테 물었다. 선생님 만져볼 수 있어요? 선생님이 안된다고 하자 머쓱해진 나는 첫째를 보러 갔다.
아가들을 만져볼 수 있는 건 퇴원 후였다.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작아 만지기 무서웠다. 따끈하고 통통한 볼. 꼭 감은 작은 눈. 볼롱 나온 뒤통수. 따끈 말랑 한 냄새. 젖을 찾는 고갯짓. 힘들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순간.
다시 한번 사랑에 빠졌다.
그동안 왜 안 낳는다고 지랄했을까?
내가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사랑스럽다.
이렇게 예쁘다고 왜 안알려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