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무력감을 주는 트리거는 무엇인가?
일상을 망가뜨릴 정도의 우울증에 다시 걸린 지 6개월 차. 불쑥 올라온 자살 사고에 정말 이게 思考가 아니라 事故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울면서 전화한 지 2개월 차. 처음으로 대면 심리상담이라는 걸 해봤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마음투자사업으로 심리상담비용을 일부 지원받았다.
사실 정신과에서 약을 받아서 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상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우울증이 무언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약 3~5년에 한 번씩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증의 강도가 찾아올 때마다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심적으로 약하다고만 하기 어렵고, 이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어슴푸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저앉아있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므로 개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상생활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으나, 아직 증상이 모두 호전되지 않은 지금, 움직일 힘은 있으나 어디가 아픈지 아직 예민하게 느껴지는 지금.
오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이번 우울증이 시작된 즈음을 이야기했지.
1. 고객사가 참 진상이었어요. 사수와 임원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들이 너무 바빴었어요. 내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는데 잘 안되어서 사수가 소통하기로 했는데, 소통하기로 한 첫날 전화 몇 통 하고 임원들 앞에서 못하겠다고 그래버리더라고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 내가 버틸 수 없는 게 맞았어. 근데, 왜 버티고 있었을까?
2. 그러고 좀 괜찮아졌었는데, 얼마 전 아빠 생일 다음날, 엄마가 전화가 왔어요. 근 시일 내에 날을 잡아 남편과 본가에 오라고 카톡으로 띡. 갠톡도 아니고 가족 단톡방에. 보통 그런 얘기하면 좋은 얘긴 아닐 테니까.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대충 엄마가 한 이야기들에 따르면) 내 말을 믿을 수도 없고, 난 능력이 없거나 사람노릇을 못하는 사람이더라고요.
3. 중3 때, 아빠가 직장을 못 구하고 있었던 적이 있어요. 사업이 망하고, Job이 안 구해지니까 아빠도 답답했겠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도 그때 우울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근데, 아빠가 그때 술 먹으면 뭘 때려 부수고, 던지고 그런 게 있었어요. 그날도 그런 날이었는데, 아빠가 칼을 들고, 라이터를 들고, 다 같이 가스 터트려서 다 같이 죽자고, 죽겠다고 하는데 엄마가 나를 두고 방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나가서 혼자 죽으라고 소리 지르고 어찌 저찌 진정시켜두었더니 부엌 쓰레기통 앞에서 아빠가 잠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보니 주변이 다 난장판이었어요. 책장은 다 쓰러져있고, 의자도 부서졌고. 그때 든 생각이 '아! 동생이 오기 전에 이걸 다 치워야 한다' 였어요. 혼자 주섬주섬 치우고 있으니까 엄마가 그제야 나와서 같이 치우더라고요. 안타깝게도 다 치우기 전에 동생이 도착했고, 동생에겐 집에 쥐가 들어와서 쥐를 잡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했어요. 동생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그 말을 듣곤 제 방으로 들어가더라고요. 나중에 들었는데, 아빠가 그런 걸 보자마자 알았고 제 방에 들어가서 옷장에 숨어있었대요.
나중에 엄마한테, 그때 참 아빠도 아빠지만 엄마가 내 뒤에 숨은 게 화가 났었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난 그때 최선을 다했고,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너네 아빠가 잘못한 거니까 아빠한테 가서 사과받아라. 난 미안하지 않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이상 엄마한테 무언갈 바라지 않게 되더라고요.
여기까지 말하자 상담사가 말했다.
겉으로 보기엔 진짜 씩씩해 보이는데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네요. 도움을 청해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아서, 혼자서 해나가야 했네요. 보호받아야 했는데, 보호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회사에서도 비슷한 상황(보호가 필요했는데 보호받지 못한 상황)이 되자 확 무너졌나 보네요. 어머님이 통제적인 성향이 좀 있으신가 봐요. 아버님의 역할도 잘 안 보여요.
그다음엔 무슨 순서로 이야기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 초등학교 5학년까지 내가 잠을 재운 이야기, 동생 교육관을 가지고 엄마와 매번 다툰 이야기, 엄마가 동생과 나를 나와 동생 모두에게 비교했던 이야기, 그걸 나중에 동생과 서로 고생했다고 한 이야기 등등.
나의 가장 친한 세 사람(남편과 친구 두 명)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 했다. 상담사는 내가 상담을 받기 전, 챗지피티에게 심리상담사라고 생각하고 답변해 보라 했던 내용들을 비슷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심리적 부모화, 역할 전도, 너무 빨리 철들어버린 아이, 통제적인 엄마. 그리고 한 가지 챗지피티가 하지 않았던 말을 하였다.
아버지도 똑같아요. 딸을 앞에 두고 본인은 뒤에 숨어계시잖아요. 동생 교육관을 가지고 어머님과 갈등을 빚어야 하는 건 아버님이죠.
아. 그렇구나. 아빠도 내가 방패였구나. 맞아, 그랬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멍한 기분으로 상담이 끝나고, 길을 걷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정말 난 기댈 곳이 없었나 보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 왜 아빠도 나를 방패로 삼았다는 걸 다시 상기시키자 그렇게 서러워졌을까? 그래도 나한테 비빌 언덕이 되어 줄 사람은 아니었어도, 나를 방패로 삼지 않길 바랐던 것일까?
* 새롭게 알게 된 것: 아빠도 엄마도 비슷해
* 내가 특히 힘들어하는 것: 보호를 요청했는데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 다음 상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우리 시부모님은 안 그러시거든요. 그래서 시부모님한테 미안해요.
* 다음 상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2: 예전에 이모부한테 성추행을 당했었다는 얘길 한적이 있는데, 엄마가 그 얘길 듣고 화를 냈어요. 그 얘길 본인한테 왜 안했냐고. 그렇게 나를 못믿냐고. 내가 힘들었던 것 보다 본인이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게 서운하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