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일이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외교관이 되라고 하셨다. 그렇게 싫다고 했었지만 내 무의식은 엄마 말을 받아들였나 보다. 당시 내 목표는 '인서울' 대학 정치외교학과 입학이 되어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독서실에서 돌아와 출출함을 이기지 못하고 밥을 고추장에 비벼먹고 있었던 것 같다.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MBC의 W. 우적우적 비빔밥을 먹으며 바라본 TV에는 아프리카 가나안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어부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 중국 등에서 온 대형 선박들의 불법 조업으로 가나안의 어부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어떤 어부는 한국 선박으로 인해 그물이 망가졌다. 가나안의 많은 어부들이 더 이상 전통 방식으로 조업해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어부의 아내들은 시장에 냉동 잡어 '사이코'를 사다 먹게 되었다. '사이코'는 외국 선박들이 자국에는 팔지 못할 잡어들을 대충 얼려 현지 시장에 몰래 파는 것이다. 이전에는 먹지 않고 버렸을 생선을 고기를 잡지 못하는 어부의 가정에서 사다 먹게 되었다.
고기잡이를 포기한 몇몇 어부들은 채석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W 제작진은 그중 한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그 화면을 보고 숟가락을 멈추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조업을 포기한 어부는 한국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한국 등지에서 버린 옷을 아프리카나 동남아 개도국들에 kg당 얼마로 팔아넘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저 사람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어디서 왔는지 알까? 모르겠지? 알고도 입은 걸까?
어쩌면 자신이 조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데 큰 책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버린 티셔츠를 입고 한국에서 온 취재진과 이야기를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저 상황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어떻게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었다. 쪽팔리지 않게 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3이었던 그때 당시에는 그 방법을 정치학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정치학, 혹은 비슷한 학과로 진학하고 싶었다. 엄마가 내 무의식에 집어넣은 정치학과 말고 내가 필요한 학과.
그렇게 나는 성적에 맞춰서 들어간, 정치학과가 없는 어느 대학에, 정치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행정학과로 진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 시민사회단체에서 조금씩 활동도 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 모든 감정들과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여기저기 상처받고 잔뜩 웅크린 채 귀를 닫아가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시민단체 활동은 생각보다 더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심리적 여유도 없었고, 여기저기 다칠 일도 많았으며, 그 다친 마음을 치유할 시간이나 방어할 마음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였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다며 씩씩거리는 고슴도치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여기저기 상처를 주고도 살고 있었다.
재작년 봄, 좀 쉬는 틈을 이용하여 꽤나 오랫동안 듣고 싶어 했던 한 시민단체의 평화교육 입문과정을 들었다. 그날은 감정이입을 잘하는 나에겐 너무나 즐거운, 롤플레잉이 많은 날이었다. 마지막 시간 즈음 진행자의 피피티를 바라보다 대체 왜 어디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아마도 루즈벨트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실 그도 그렇지만 그 근래 한 정당의 비례대표와 관련된 사건이라던가 숙대 사건, 신종 코로나 등으로 약간씩 무기력의 늪으로 침잠할 기색이 보이긴 했는데 그 모든 게 겹쳐서 그랬겠지만 여하튼 뭔가 피피티를 보고 순간) 가나안의 어부가 입고 있던 빨간 티셔츠가 생각났다. 내가 왜 이 길로 접어들었는지, 놓지 못하는지,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 생각나고 말았다.
쪽팔리게 살지 말아야지.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자주 '사람은 안 변해',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참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편이고, 남을 고쳐 쓰려고 하는 것보다 내가 맞춰 사는 게 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사람은 변할 수 있다'를 경험하였고, 사회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모습도 목격하였다. 그 경험들은 나에게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도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위 경우는 말 그대로 '다행'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아무리 설득하고 소리치고 애를 써도 사회는 꿈쩍도 안 할 것 같이 보인다. 어쩌면 더 나빠지기만 하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버티면 분명히 사회는 변화한다. 생각보다 인류는 신기한 존재들이어서 더 나은 길을 기어코 잘 찾아왔다. 난 믿는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초심을 기억한다. 내가 무얼 위해 과거의 선택들을 해 왔는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