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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가족이 보낸 사전 투표일

비록 투표는 하지 못했지만 미래를 여는 시도가 되기를

by 현재 작가

오늘은 사전 투표일 시작일이자 부모님 댁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미리 준비해둔 음식과 새로 구입한 아빠 옷을 챙겨서 부리나케 간다. 오늘은 부모님의 소중한 한 표까지 챙겨드려야 하니 마음이 더 바쁘다. 부모님이 모두 주간보호센터에서 가신 시간에 집에 들어가 쓰레기부터 정리한다. 엄마는 2년 전부터, 아빠는 1년 전부터 치매로 인해 등급을 받아 센터에 다니시고 계신다. 재활용 분리 수거함에 버릴 물건, 일반 쓰레기, 공원에서 주워오신 꽃과 나뭇가지를 모아서 버리고, 세탁이 필요한 옷과 담요를 찾아 세탁기에 넣어 돌린다.



조금 있으니 아빠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다. 갈아입을 옷 두 벌씩 챙겨서 가방에 넣어 마중 나간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갈아입을 아빠 옷을 부탁드린다. 항상 뵐 때마다 따뜻한 손길이 느껴져서, 뵙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공원에서 계셨다. 여전히 엄마는 식물 뭉치를 줍고 계신다.


부모님 신분증을 모두 챙기고, 공원에 계신 엄마까지 차에 모시고, 가까스로 사전 투표 장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오늘의 투표는 종료되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늘 챙겨드려야 할 부분이 많은데 촉박하게 움직였으니 내 실수가 분명하다.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마트에 들려서 부모님이 드실 간식과 과일거리를 구입한다.


치매 가족은 투표는 커녕 투표장 입구만 갔다가 허망하게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투표소 입구에서 식물 뭉치를 든 엄마와 아빠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꽃다발을 든 엄마를 보니 시상식에서 큰 상을 받으신 것 같다. 어느 순간 작가 지망생의 반짝이는 두 눈에는 투표소는 시상식장 입구로, 식물 뭉치는 꽃다발로, 연로하신 부모님은 좋은 일이 생기신 것처럼 보인다. 투표 장소는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레드카펫이 깔린 시상식 장소처럼, 돌봄과 관심이 필요한 분들에게 희망이 열리는 마법의 장소처럼 보인다.


이번의 도전은 허망하게 끝났지만 본 투표일에 다시 도전하기로 다짐한다. 다음에는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처럼 여유있게 부모님을 모시고 투표에 참여하기로 다짐한다.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다음 번 선거일, 다다음 선거일도 부모님을 모시고 투표를 하러 가는 장면을 그려 본다. 몇 번의 투표를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시리다.


힘들게 투표에 참여하시는 부모님의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기를. 그리고 그 소중한 표가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도, 가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는 수많은 치매 가족에게도 큰 도움이 되기를. 우리의 소중한 한 표가 돌봄의 사각 지대에 놓인 가족들에게 왠지 모를 좋은 일을 기대하게 하는, 모두에게 시상식의 문을 여는 새로운 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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