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름날의 위로
아침 9시다. 전화를 걸어 아빠를 깨울 시간이다. 새벽잠이 없는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시지 못해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준비되실 때까지 계속 기다리신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다른 어르신들의 일정까지 늦어지는 민폐가 발생하기에 전화를 받으실 때까지 전화를 한다. 다행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아빠 아직도 주무시지. 지금 깨워주세요.”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으니 센터 차량 운행 시간에 맞춰서 나가시는 것도 숙제거리이다.
아빠를 깨웠으니 오전 업무는 완료이다. 치매 가족의 느긋한 토요일이 시작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특별히 아빠 옷은 애벌빨래를 해서 세탁기에 돌린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 아빠가 마지막으로 벗으신 옷은 집으로 가져왔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아빠 옷에 얼룩이 많이 묻었으니 더 신경써달라는 전화가 왔다. 보호자보다 더 살뜰하게 챙기시는구나, 아빠가 음식을 드시면서 잘 흘리신다는 것을 깜빡했구나라고 생각하니 코끝이 살짝 아려왔다.
아빠는 옷을 갈아입는 것을 꺼려하셔서 “이 옷 사이즈 맞는지 한 번 입어 주세요”, “제거 사면서 같이 사 왔으니 한 번 입어 보세요”라고 조르는 방법 밖에 없다. 가끔 나의 소망이 하늘에 닿았을 때는 아기새처럼 먹이감을 낚아채서 세탁 바구니에 넣는다. 물론 아무런 수확물도 없이 집으로 온 날도 많다. 이번에는 늦게라도 벗어주셨으니 세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동네 산책을 나간다. 어느새 하천은 풀숲으로 우거지고, 햇살은 속살마저 따갑다. 불과 얼마 전에는 연두빛으로 물든 하천을 보면서 신기했는데 계절의 변화가 실감이 난다. 풀숲에 피우는 노랑 여름꽃을 보는 것도, 헤엄치는 송사리 떼를 구경하는 것도, 유유히 오리가 하천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늘 새롭다. 요즘에는 귀여운 아기 오리떼가 엄마 오리를 따라 헤엄치고, 먹이 먹는 모습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남편과 나는 더운 여름 햇살과 찰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오리 가족의 느긋한 하루를 탐험하며 일상의 변화를 만끽한다. 어느덧 푸드덕 날갯짓하는 새와 오리떼를 보면서 나만의 날갯짓을 생각해 본다. 숨겨왔던 날개를 펼치고 얼마만큼이나 나아갔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 날이다. 밖에 나온 김에 부모님 댁에 가져갈 음식을 구입하려고 마트에 들른다. 아빠가 좋아하는 고기와 빵, 엄마가 좋아하는 초록빛 향기 가득한 부추와 과일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집으로 향한다. 불고기를 볶고, 부추전을 부치고, 과일을 다듬는다. 내일은 긴 하루를 보내야하니 미리 가져갈 음식도 정리하고, 세탁한 옷도 잘 개켜서 넣어둔다.
치매 가족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집에 안부 전화를 걸어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신 일상을 묻고 나의 일상도 전한다. 부모님도 평범하고 느긋한 하루를 보내신 것 같다. 이렇게 오늘 하루를 잘 지냈으니, 우리 가족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 잘 지낼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세상을 향해 더 날개를 펼쳐보겠다고, 조금 더 세상을 향해 날아가 보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 하늘에 닿기를, 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럽듯이 그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는 오리 가족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챙기는 가족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모두에게도 평범한 여름날의 하루가 다정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