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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가족의 여름나기

서로의 삶의 온도를 맞추는 법

by 현재 작가

“엄마,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견딜만 해요?”

“덥긴 뭐가 더워?”

“집에 에어컨도 없는데 걱정되서 그러지.”

“하루 종일 시원한 주간보호센터에 있다가 집에서 잠만 자는데 뭐가 덥냐? 밤에는 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아직도 문 닫고 잔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는 여름밤이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 주간보호센터는 잘 다녀오셨는지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드린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 댁은 어느 순간부터 에어컨이 없었다. 기록적인 무더위 때마다 에어컨 설치를 고민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신 것 같다.

몇 주만 버티면 에어컨은 공간만 차지하는 요물단지가 될거라고, 조금만 버티면 찬 바람이 불어서 괜찮다는 부모님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물건을 버리는 것과 돈을 쓰는 것을 예전보다 더 싫어하시니 방법이 없다. 그나마 결혼 전에는 시원한 마트로, 은행으로, 도서관으로 모셔 드렸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니 걱정만 앞선다.

반대로 우리집은 늘 에어컨 전쟁이다.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힘든 남편과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부인이 한 집에서 생활하니 생기는 일이다. 남편이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나는 짐을 싸서 방으로 피신한다. 방에서 책도 보고, 핸드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남편은 방에 침입한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과 사투로 방만은 에어컨에서 지켜낸다.

문제는 밤이다. 에어컨을 켜야 잠이 드는 남편과 에어컨 바람이 싫은 부인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시간이다. 겨우 합의를 본 것이 열대야 취침 예약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방법이다. 물론 땀을 흘리며 자는 남편을 볼 때가 많았다. 반대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를 보면 답이 없었다.

차라리 겨울이면 분리 난방이 가능한 전기매트로 어느 정도는 온도를 맞출 수 있는데 여름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결혼 2년차 다정한 부부 관계가 에어컨 따위로 흔들릴 수 없다. 싸워도 아직은 같은 방을 쓰고 싶은, 함께 있어서 좋은 햇병아리 부부이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서로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치매 문제로 신경이 쓰였는데 같이 살아보니 다른 것이 문제가 된다. 체온도, 먹는 취향도, 생활 습관까지 다르다. 40년 이상을 각자의 리듬에 맞게 살아왔던 남녀가 갑자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생활하니 벌어지는 결과이다.


에어컨과 보일러 온도를 조금만 올려도 더운 남편과 온도를 조금만 낮춰도 힘든 부인은 늘 팽팽하게 맞선다. 부드럽고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는 부인과 칼칼한 국물과 쌀밥을 좋아하는 남편의 식성도 중간 지점이 없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기로 했건만 늘 침대로 파고드는 게으름과 바닥난 체력으로 누가 먼저 오랫동안 누워 있는지를 내기하는 것 같다.

비록 자신에게 맞는 온도와 리듬으로 생활하는, 일상을 멋진 여행처럼 사는 삶은 아니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던 풋풋함은 조금씩 걷어지지만. 그래도 함께해주어서 고맙다고, 누구나 힘들어하는 치매 가족이 되어주어서 더 고맙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결국 서로의 삶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 서로의 삶을 껴안기로 했다. 껴안다 보면 서로의 온도도 맞춰질거고, 식성도 비슷해질거고, 일상도 여행처럼 잘 영위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오늘도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서로를 껴안는다. “오빠, 에어컨 바람이 서늘해서 껴안는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그리고 너무나도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 걱정되어서 내일 부모님 댁으로 남편과 함께 출발한다. 치매 가족의 여름나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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