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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가족의 분주한 아침

네 칸 플라스틱 반찬통에 음식을 담으며

by 현재 작가

오늘도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가져가야 할 짐을 늘어놓고, 음식을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의 주된 업무는 드실 만한 반찬을 정리해서 가져가는 일이다.


처음에는 반찬통 여러 개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네 칸 반찬통을 사용한다. 냉장고에서 꺼내 드시기도, 찾기도 편하실 것 같아서 몇 년째 유지하고 있다. 요즘에는 약간의 요령도 생겨서 우리집 반찬까지 같이 만들기도 하고 넉넉히 만들어서 얼려놓기도 한다. 준비를 하다 보면 출발 시간이 늦어져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미리 해놓기도 한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는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 것을 깜빡하지 않았을까, 그런 음식을 드시고 탈이 나시지 않았을까라는 걱정이 늘 앞선다. 부모님께서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지 않았을 때 국을 데워서 드시고 식히려다가 그대로 베란다에 둔 적이 종종 있었다. 이제는 모두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면서 그런 걱정은 덜었다. 대부분 식사는 주간보호센터에서 해결하시니 다행이다. 그래도 안 가시는 날이나 주말을 대비하여 음식을 준비한다.


오늘도 바쁘게 음식을 하면서 예전 생각이 떠오른다. 20대 초반에 독립을 한 나는 결혼 전까지 엄마 반찬으로 생활했다. 엄마는 늘 반찬과 밥을 해서 쇼핑백에 가득 담아 주셨다. 혹시 먹다가 남으면 냉동실에 보관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혹시나 꺼내 먹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한 끼 분량으로 소분해서, 한 번에 데워먹기 편하게 담아 주셨다.


처음에는 준비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손사래쳤다. “우리 먹을 반찬도 해야 하니까 하는 거야. 하는 김에 하는 거니까 가져가.”라고 하시며 밥과 반찬을 한가득 안겨주셨다. 내가 가끔 나타나는 날에 엄마는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며, 주방에서 분주히 보내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엄마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어차피 하는 김에 하는 거니 반찬 가게 가지 않아도 되네’, ‘밥을 안 해도 되니 편하네’, ‘부모님 얼굴도 보고 반찬까지 얻어오니 괜찮네’ 따위로 아기새처럼 엄마 반찬을 받아먹었다.


이제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보니 그 수고로움과 고생스러움을 몸소 느낀다. 물론 나도 엄마처럼 우리집 것도 생각해서 만든다. 처음에는 초보라서 힘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번 해도 같은 결과이다. 혼자 사는 나를 걱정했던 엄마의 마음이, 늘 좋은 것은 자식에게 양보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여서 네 칸 반찬통을 채웠다. 입맛 없는 여름날에 더운 주방에서 반찬 걱정, 식사 걱정이 한가득인 돌봄이 필요한 수많은 가족이 떠오른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어떤 음식이 건강에 좋을지 매번 준비를 해도 정말 어렵다. 어떻게든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채워본다. 음식은 반이 정성이요,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은게 아니겠는가.


계란찜이나 계란말이는 빠짐없이 준비하고 무생채, 콩나물무침, 오이무침 같은 야채 반찬은 번갈아가며 넣는다. 냉장고에 들어간 생선구이는 잘 안드시는 경향이 있어서 고기나 해산물을 번갈아가며 준비한다. 물론 늘 잘 드시는 것은 아니다. 다음 번 방문했을 때 반찬통을 열어보면 음식을 드신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시험 결과표를 받는 심정으로, 반찬통을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다.


이제 부모님 댁으로 출발한다. 나도 엄마에게 “어차피 우리집거 하면서 만든 거야.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냉장고에 반찬통을 넣을 것이다. “맨날 얻어만 먹더니 이제 살림꾼이 다 되었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환영처럼 들린다.


부디 맛있게 드시고 냉장고에 잊지 않고 넣으시기를, 무더위에 입맛을 잊지 않고 잘 드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도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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