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와 치매 가족 이야기
나는 늘 무언가를 끄적였다. 처분하지 못한 일기장도 수십 개가 넘었고, 등단을 꿈꾸며 쓰던 글도 수십 개가 넘었다. 늦게라도 빛을 보는 경우도 많으니 괜찮다고 다독였다. 용기를 내어 여러 번 투고를 했지만 늘 응답이 없었다.
등단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문을 두들긴다. 오랫동안 글쓰기의 열망을 품은 학생이 입학했다는 이유로 문학 담당 교수의 표적이 되었다. 내가 쓴 글에는 냄새가 났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문학 청년이라는 냄새를 지우기가 힘들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쓴 7년의 세월 동안 내가 얻은 결론은 문학을 사랑한다는 확신 뿐이었다.
잠시라도 학문에 발을 담가보니 내면의 이야기를 끄적거리는 글쓰기와 학문적 글쓰기는 전혀 달랐다. 물론 둘 다 아무런 문제 없이 잘하시는 분들도 많다. 결국 나는 내면의 이야기에 치중하는 글쓰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예민하고 불안한 나의 성향은 노교수의 심기를 거스르기 일쑤였고, 논문과 글쓰기도 퇴짜맞기 일쑤였다.
등단도, 학위도 잊혀져 갔다.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꿈처럼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하고, 더 생각지도 못한 치매 가족이 되었다. 내가 계획한대로 이루어지는게 인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인생에서 펼쳐졌다. 삶은 고단해졌고, 짊어져야 할 무게는 늘어났고, 가족 관계는 엉망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치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지인들의 반응은 ‘많이 힘들겠다’와 ‘좋아지시지 않으니 빨리 요양원 알아봐라' 두 가지로 정리되었다. 위로해주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여러 번 듣다 보면 같은 이야기이니 도와줄 방법이 없다. 공감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지만 어쩔 수 없는 반응을 보면서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치매 가족의 어려움은 치매 가족이 되지 않는 이상 공감하기가 어렵다. 매 순간 감정이 뒤바뀌는 엄마를 상대하는 것은, 점점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는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겪지 않으면 알기가 어렵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치매가 흘러가는 양상도 다 달라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매주 찾아뵙고 살펴드리기는 하나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다. 집 청소하고, 간식 챙겨드리고, 쓰레기 버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괜찮으신데’, ‘더 안 좋아지신 것 같네’ 이 정도의 느낌만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는 속상한 마음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지’, ‘위로해 드리려고 갔는데 오히려 내가 더 화만 내고 말았네’, ‘다음에는 이런 방식으로 챙겨야겠다’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아무한테도 공감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는 마음을 적는다. 브런치스토리를 거쳐갔던 대부분의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글을 쓰는 힘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 나에게 글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 누군가를 계속 기억하는 힘이다. 나를 되돌아보며 나의 마음을 다잡는 일 그리고 함께해야 할 긴 여정을 다독이는 힘이다.
주변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떠들던 우리 가족 이야기는 흩날렸다. 그러나 내 손끝과 떨림으로 쓴 브런치 글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