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위 왔는가.”
“멀리서 우리 귀한 아들 왔네! 한 번 안아봐도 되지.”
“저녁은? 백년손님이 왔는데 장모가 되어서 밥도 한 번 안차려 주었네.”
…
남편이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엄마의 흥분 상태가 지속된다. “어떻게 왔는가? 저녁은?”를 여러 번 물어보면서 식사를 준비하신다고 한다. 여러 번 같은 상황을 겪은 나는 “다 준비해 왔다.”라고 답을 하며 엄마를 말린다.
남편과 나는 식사를 마치면 집 청소를 시작한다.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를 피해서 청소하고 몰래 쓰레기를 버린다. 노인네 집에 와서 설거지와 청소만 하고 간다는 우리 엄마의 중얼거림도 함께 시작되는 순간이다. 엄마를 달래면서 동시에 집도 늦지 않게 치워야 하니 늘 마음이 바쁘다.
가끔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과 함께 방문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나 고민했다. 내색은 안하지만 결혼 2년차 남편 역시 우리 부모님을 상대하는 일이 보통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남편의 모습에서 서로의 사랑이 느껴진다. 희미해진 기억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엄마는 어떻게든 사위를 대접하려고 옆에 있는 딸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늦게나마 사위를 봐서 행복해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더 일찍 결혼을 할 걸 그랬나’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나에게 결혼은 늘 남의 이야기였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좋은 인연이 다가오면 한 번 생각해보지 뭐’ 정도로 살아가다가 어느덧 40세가 넘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지인의 소개로 남편과 인연이 닿았다. 아직까지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두세 번 만남에서 결정이 났다.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작고 가늘게 찢어진 눈이 그렇게 멋지고 카리스마 있더라. 마음에 안 드는 건 키가 작은 거야. 이렇게 멋진 남자가 키가 작아서 아직까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키가 작은 것도 너무 좋은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랑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사람이 너무 좋은 거야.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지금까지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배가 나온 거야. 이렇게 좋은 남자가 배가 나와서 내 남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배가 나온 것도 너무 멋져 보이더라.”
물론 결혼은 현실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풋풋함은 조금씩 걷어지고, 처음 약속했던 그런 결혼 생활도 아니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채워가야 하는 도전의 연속이다. 그래도 치매 가족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뜻밖의 것들로 서로의 여백을 채워갈 수 있으니 괜찮다고, 그래서 늦은 나이에 도전한 우리의 결정은 만점에 가깝다고 말해주고 싶다.
청소를 마치고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늦게 본 사위가 왜 그렇게 좋아?”
“내 딸과 함께 살아줘서 고맙고, 아들 같아서 좋고.”
“엄마, 나는 늦게라도 아들 데려왔으니 효도한거다.”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치매 가족은 한 번 더 웃으며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