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부르면 생겼던 마법 같은 일을 꿈꾸며
엄마는 어떤 물건도, 소소한 돈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목 늘어난 티셔츠, 고무줄이 늘어난 바지, 지퍼가 망가진 점퍼도 새 옷처럼 고쳤다. 심지어 어린 남매와 아빠까지 머리 미용도 직접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행사로 흰색 치마를 입어야 했을 때도 엄마는 주름치마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 모든 일이 마법처럼 해결되었다.
그런 엄마였기에 재활용 쓰레기장에 뒹구는 화분도, 삐걱거리는 의자도, 낡은 옷도, 오래된 주방 물품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엄마 손에 들어가면 수명이 다한 물건도 다시 생명을 얻었다. 엄마는 낡은 화분에 정성스럽게 꽃과 선인장을 가꾸고, 삐걱거리는 의자도 고쳐 쓰고, 낡은 옷도 직접 수선해서 입고, 오래된 주방 물품도 손질해서 사용했다.
문제는 엄마가 쓰는 물건은 버려지는 일이 없는데 어딘가에서 선물로 받거나 주워온 물건은 계속 생긴다는 점에 있었다. 어느 순간 엄마의 치매가 진행되며 물건에 대한 애착이 더 심해지셨다. 엄마가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며 살림을 놓으신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창고에 보관된 물건은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넘쳐났고, 베란다와 다용도실까지 점령하며 동선을 막기에 이른다.
언제쯤 치울까 고민만 하다가 3년 전부터 결혼과 신혼살림을 핑계로 집으로 많이 가져오고 나눔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부모님 댁을 점령하던 세간살이가 드디어 새 주인을 맞이한다. 우리집을 잘 찾아보면 큰 그릇, 들통, 채반, 숟가락 등 어디 하나 엄마의 물건이 아닌 게 없다.
우리 부부는 엄마의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엄마의 냄비와 프라이팬으로 끓이고 볶아서 음식을 만들고, 엄마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식사를 한다. 몸이 아파서 등산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하여 내가 엄마의 등산복과 등산화로 산책을 하고 산에 오른다. 코트와 정장을 입을 일이 없는 엄마를 대신하여 내가 엄마의 옷을 입고 직장과 마트를 다닌다.
이제 나는 치매와 노환으로 수척해지신 엄마가 누릴 수 없는 일상을 대신하여 엄마의 삶도 살아가고 있다. 직장을 다니고, 장을 보고, 산책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가족과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소한 일상을 엄마를 대신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엄마의 몸에서 세상에 나왔지만, 엄마가 키우고 가꾸고 빚어낸 또 다른 삶이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엄마”라고 부르면 해결되는 마법은 없다. 그래도 나는 우리집에 있는 엄마의 손때 묻은 물건과 세간살이를 볼 때마다 “엄마”를 부른다. 엄마 손에 들어가면 버려진 물건도 새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그런 마법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꿈을 꾼다.
“엄마”라고 부르면 기억 속에 있는 우리 엄마가 벌떡 일어나서 ‘다 괜찮다’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모두에게 다정하게 말해주실 것만 같다. 나에게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든 치매 가족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