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by 남숙


토요일 저녁 서대문 사생활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각자 준비해 둔 마실 거리와 간단한 디저트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주방으로 들어선다. 선생님이 준비한 레시피를 읽으며 진지하게 시연을 지켜본다. 오늘 만들어 볼 메뉴는 아게다시도후. 일본식 두부 요리로 두부의 수분을 뺀 뒤, 전분가루를 묻혀 튀긴다. 직접 만든 텐쯔유에 담가 가쓰오부시를 올리면 완성. 요즘 유행하는 이자카야 메뉴로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쉬워 보인다. 궁금한 건 질문하고 선생님이 만든 요리를 맛보며 맛을 기억해 본 둔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 만들어 볼 시간. 분명 선생님은 간단하게 만드셨는데, 직접 만들어 보니 만만치가 않다. 똑같이 따라 했는데 기름이 여기저기 튀고 난리다. 텐쯔유도 분명 계량대로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짜고 달다. 이런. 역시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인 건가. 나의 표정으로 마음을 읽은 선생님이 이야기한다. “포기하지 말고 만들어 먹어. 제발! 아니, 왜 열심히 배우고 맨날 사 먹는 건데!!” 선생님의 귀여운 잔소리에 메이트들 모두 한바탕 웃는다. 완성된 요리와 각자 준비해 온 것들로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마시며, 우리는 우리를 나눈다.


몇 해 전 나는 인생 권태기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스트레스로 쌓이다 결국 번아웃이 왔다. 인생을 숙제하듯 누군가가 정해 둔 시간에 맞춰 살던 그때의 권태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 회사는 바빴고, 사랑은 모르겠고 결혼만을 위한 연애는 매번 맘에 들지 않아 짧게 끝이 났다. 가까운 친구의 반복되는 푸념도 더 이상 들어주기가 힘든 그때. 나는 남자친구에게도 오랜 친구에게도 이별을 고했다.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 회사는 못 그만두고 직무를 변경해 달라 협박하듯 요청했다. 절대로 안 들어줄 것 같던 회사는 의외로 쉽게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덕분에 일도 애인도 친구도 한순간에 없어졌다. 갑자기 생긴 이 많은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막막했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그때, 살기 위해 나를 키우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 후 육아에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나를 키우겠다니. 누군가 비웃을지 몰라도 나에겐 내가 제일 소중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육아.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건강한 운동과 요리였다. 다이어트를 위해 굶고 하는 운동은 몸에 고문이나 다름없었고, 건강에도 좋을 리 없었다. 고문 같던 헬스를 그만두고 살은 잘 빠지지 않지만, 좋아하던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했다. 잘은 못해도 하고 나면 매번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정신이 맑아지니 자연스레 잘 잤다. 남는 시간에는 건강하게 먹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점심에는 샐러드로 버티다 저녁에 배달음식으로 폭식하던 습관을 버리고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늘어나는 레시피만큼 삶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인스타 광고로 알게 된 소셜링 커뮤니티 넷플연가의 일본 가정식 요리 모임. 인생의 레시피를 추가하기 위해 우연히 시작한 그 모임이. 우리의 처음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서대문의 사생활에 모여 어색하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처음으로 함께 요리를 만들었다. 모임장은 한국인 남편을 따라 서울에 온 지 19년 차가 된, 작은 일식집의 안 주인이자 2명의 자녀를 둔 일본인 엄마이자 언니. 수업 시간 중간중간 당시 모임장님의 스트레스 원인이던 사춘기 아들과 남편 흉을 아주 맛깔스럽게 하셨는데,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가 잘 풀렸다. 그 후 3주에 한 번 주말 저녁에 만나 요리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점점 친해졌다. 나이도 직업도 모르지만, 음식 취향과 요즘에 관심 있는 분야만 이야기하는 사람들. 나 이외의 사람을 더 이상 인생에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웬일인지 새로 사귄 친구들이 좋았다.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인생의 경험치도 다 다르지만,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친구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겨울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오는 시간 동안 메이트들과 퇴근 후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함께 여행을 다니고 전시회를 보며 생각을 나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나이와 직업, 과거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현재 각자의 삶을 지키며 가끔 만나 즐겁게 먹고 마시는 사이. 유쾌한 만남 덕분으로 인해 그 당시 권태기를 잘 보냈다. 인생의 선배인 메이트들은 나의 고민들과 걱정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망한 소개팅 이야기를 부러워하며 망해도 좋으니 다시 소개팅을 해보고 싶다는 기혼인 메이트들을 보면 어쩐지 나의 걱정이 가벼워졌다. 하는 일이 지겨워 언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나 짜증이 잔뜩 나다가도 자기 일을 사랑하는 메이트들을 보면, 어차피 해야 하는 회사 생활 불평보다 나도 저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일해야겠다 생각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먹고 마시기 위해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스스로를 채우며 바쁘게 사는 메이트들의 영향으로 나도 다시 인생의 활기를 찾았다.


시간이 지나며 메이트들 각자의 작은 지옥들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메이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작지만 강한 울림을 주었다. 스스로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사람들. 나는 메이트들을 통해 각기 다른 여러 명의 인생을 배웠다. 어쩌면 당시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무거워져 나를 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달라지는 인생을 못 받아들이고 서로 비교하며 억지로 정답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어 모든 관계를 단절했나 보다. 하지만 나의 밥메이트들로부터 배웠다. 인생엔 정답이 없다는 것. 별별 일이 있지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지나간다는 것. 그럼에도 사람은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것. 그때쯤 불평불만들로 가득 찬 글을 보기가 싫어 그만두었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다시 쓴 일기장에는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가득 담겼다.


또다시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왔다. 이번 주말 저녁은 서대문이 아닌 강남의 한 결혼식장으로 모인다. 오늘은 쿠킹클래스에서 만난 인연이 결혼하는 날. 한방에 두 명을 보내 기쁘다는 모임장 언니의 기쁜 마음과 나의 인연은 어디에 있으려나 하는 동생들의 마음이 섞인 결혼식장에 메이트들이 모여 왁자지껄 축하하고 있다. 편한 복장으로 주방에서 만나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보니 다들 훤칠하고 예쁘다. 몇 명의 메이트들과 신랑이 함께 준비한 훌라 축무를 보고 있으니 괜스레 감동의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름답던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에 모여 앉아 오늘은 셰프님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다. 아, 맛있고 즐겁다.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이 오직 밥을 함께 먹는 사이. 언제 헤어질지 모를 시절인연이겠지만, 덕분에 먼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 행복한 일들이 가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