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무인도에 가도 바위로 근력운동을 할 나에게

by 배다현

요즘 내가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많은데 그중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일'이다. 남들에 비해 그다지 열심히 살지도 않는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이 없나. 이런 내 생각 때문이겠지. 얼마 전에 사무실 책상 위 내 책을 보고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정신적 여유가 있나 보다 책도 읽고. 난 입사 5년 차까지 책 읽어볼 생각도 못했다." 뭐라는 거야. 아니 뭔 소린진 알겠다. 책도 읽지 말고 남는 시간에도 업무 생각만 하라. 24시간 일에 미쳐 사는 선배 입장에서는 내가 한심한 것이다. 그래도 글 쓰는 직업 가진 사람이 그런 소릴 자랑스럽게 하는 게 좀 우스워서 별로 안 와닿았다. 나도 여유가 있어서 가방에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며칠이고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표지만 상하게 하고 읽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차라리 나도 일에 대한 강박만 있었으면 속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내 욕망의 결은 선배와 달라서, 하나에 몰빵 하는 삶을 별로 동경하지 않는다. 한 과목만 100점 맞기보다는 고루고루 잘하고 싶은데. 원하는 평균 점수가 50점이 아니라 80점인 것이 문제다. 남들보다 일도 잘하고 싶고 잘 놀고 싶고 잘 쉬고 싶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연애도 모임도 했으면 좋겠고 사회 문제나 트렌드에도 빠삭했으면 좋겠고 그럴듯한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고 건강하고 싶고 보기 좋은 외모이고 싶다. 누가 들으면 굉장히 열심히 살아서 끝내 잘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인 줄 알겠으나 그렇지도 않다. 선택과 집중이 잘 안 되는 내 삶의 평균은 늘 50점이다. 주어진 시간이 똑같이 24시간인데 내가 슈퍼맨도 아니고. 그럼에도 항상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이다. 더 효율적으로 살아서 평균 80점 이상 맞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반나절 이상을 보내기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정의하자면 어떤 목적이나 계획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맡겨둔 상태. 주말에도 6시간 정도 자고 나면 오늘 뭘 해야 완벽한 주말을 만들까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오후 2시 무렵이 되면 벌써 마음이 초조하다. 이러다간 오늘 아무것도 못하겠어. 아무것도 못하는 게 언제부터 나에게 문제가 된 것일까.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생각이 왜 점점 안 될까? 오늘도 어김없이 조급해진 나를 발견하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 살던 어릴 적에 너무 할 게 없어서 마당에 놓인 리어카에 누워서 공상 따위를 하다가 햇볕 아래 잠이 들었던 때를 떠올리면서. 내가 온전히 쉬려면 누가 나를 무인도 같은 곳에 떨어뜨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


진짜 웃긴 건 무인도에서 뭘 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다가 바위를 들고 근력 운동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여행도 휴식보단 체험의 개념으로 여기는 나다. 무인도에 가면 쉴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어이가 없어서 노트북을 펴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쉬지 못하는 나를 탐구하려고 또 뭔가를 한다. 그래도 이건 비교적 '사회적인 나'에게는 쓸모없는 일 축에 속하니까 위안을 삼는다. 오래전 읽었던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꺼내 들었다.


하이데거의 시간 철학은 그가 속한 시대에 결부되어 있다. 그의 시간 비판적 진술들, 예컨대 만성적인 시간 부족에 대한 진술도 그의 시대에 해당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시간이 없는가? 우리는 어째서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하는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시간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의 일상적인 사무를 위해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런 일들의 노예가 돼버린 것이다. 결국 시간이 없다는 이러한 의식은 예전처럼 시간을 미루며 낭비하는 것보다 더 큰 자아의 상실을 가져온다."


읽고 발췌한 내용이 아니라 그냥 아무장이나 펴서 보고 적은 것. 쉼 없이 무언가 하면서도 늘 따라오는 상실감의 원인이 저런 건가 보다. 오늘 내가 누울 책이 여기. 오늘은 커피 내려서 이거나 읽고 말아야지 했다가도 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떠오르고 여느 때와 비슷한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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