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주 차 씀씀이 기록
한 주간 휴대폰 메모장에 찔끔찔끔 써 내려간 글들을 모아 씀
1. 어쩌다 보니
제대로 실천해본 적 없지만, 항상 써내려 오던 새해의 계획들. 이번에는 적지 않았다. 유난히 정신없던 연말이 한몫했고 가장 큰 이유는 의욕이 없어서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지금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가득한데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하루 이틀 어느덧 열흘, 그리고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계획이 없다고 한심스럽지도, 무기력하지도 않다. 변한 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 이건 챙겨서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 정도는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 내 안에서 여전히 줄다리기 중이다. 우유부단한 걸까, 욕심이 많은 걸까 이런 정의를 내려야 할까. 생각을 말자, 어차피 결론 날 일이 아니다. 결국 당장의 일들을 치워낼 뿐이다. 해내는 것 말고 치워내는 것뿐.
2. 같이. 함께
요즘 같이하는 삶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노년의 외로움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노력 없는 슬픔만을 미리 삼키는 중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집을 나서면 옆 옆 주택의 한 노부부를 만나게 된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은 아이가 되어버린 부인을 지역구 데이케어 센터 차에 태우고 손을 흔든다. 이기적인 나는 슬퍼하기도, 아름답다 생각하기도 전에 나의 훗날을 걱정한다. 내가 온전치 못할 때 누가 나를 챙겨줄까. 차라리 저 할머니는 부러운 일일지도 몰라. 이번 주는 새로운 나의 유서를 업데이트해야지. 2020년 버전은 어떤 내용을 더 담아야 할까 갖은 생각을 하며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그 노부부를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챙겨주고 챙김을 받는 관계에 대해 부러워했건만 부인을 보내고 문 앞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남겨질 또는 책임 아닌 책임을 져야 하는 생활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 그 누구도 쥐어 주지 않았건만, 사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함께는 좋은 일 일까? 함께는 좋아 보였지. 나는 함께이고 싶을까? 함께여도 늘 혼자이고 싶었지.
언제나처럼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기 싫다는 마음으로 나의 소원 지구종말을 기원해본다.
3. 반복
퇴근길 그래도 과일 하나쯤은 집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스스로를 관리할 줄 아는 현대인이라 우쭐해하며, 적당한 과일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버린 귤, 청포도, 딸기.
하얀 솜털이 생겼고 또 그렇게 버려졌다. “건강해야 해” 하지만 아침이 되자 초록색 봉투와 함께 내 건강을 위한 습관적 투자는 다시 폐기 처분되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도 어김없이 귤 한 봉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