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컬렉션의 연속
#1
"하루에 물 몇 잔 마셔요?"
이 질문 앞에서는 나는 머뭇 거리면서도, 아주 짧은 대답을 하겠지. 눈뜨고 양치 후 한두 잔, 자기 전 한두 잔이 어쩌면 전부인 대부분의 날. 일상 속에서는 시간이 없어 물은커녕 화장실도 잘 가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라 흔히들 이야기하는 건강한 습관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카운트할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면 그 답이 달라진다.
어쩌면 물어보지도 않은 사족을 붙일 것이다. 마치 찬호 박 처럼 투머치 토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컵 좋아하세요? 아끼는 컵 있으세요?"
이 질문 앞에선 눈빛이 달라질 것이고 어쩌면 목소리가 조금은 떨릴지 모르겠다.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일단 좋아하는 장르는 맞으니까 호들갑을 떨어볼 것이다.
#2
컵을 언제부터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더라?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모았다고 할 수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어느 날 살펴보니 가짓수가 많아졌네 싶을 뿐. 하지만 많고 많은 키친웨어 중 '컵'이 늘어난 이유는 분명한 것 같다.
-요리를 즐기진 않는다. 그래도 예쁜 그릇들은 좋아한다.
- 하우스푸어라 많은 것을 보관할 물리적 공간이 없다. 물론 돈도 없다.
- 마지막, 러브 마이셀프. 물 한잔을 마셔도 제대로 마시면 이전의 모습이 어떠하건 꽤 잘 포장한 기분.
#3
'컵'에 대한 글을 쓰겠다 마음먹은 주말, 집에 있는 나의 컵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매일 꺼내보았자 한 두 개의 컵을 꺼내어 사용하고 다시 수납장에 넣기 때문에, 하나 둘 나오는 컵들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생각보다 많았네, 해봤자 물만 마시면서...'
이것저것 컵들에도 나의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유리, 법랑, 세라믹 각기 다른 재질의 컵들은 물론 본거에서 가져온 할머니의 다기까지. 밥 한 끼도 제대로 차려먹지 않는 1인 가구 치고는 많긴 많았다.
이 컵들이 나에게로 온 지난 이야기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분도 들었다.
어찌하다 많아진 나의 컵들을 이야기하자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물 잔으로만 쓰이는 것이 영 안타까웠는데 이 기회에 컵들이게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는 씀씀이 기록을 써 볼까 싶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