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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Mar 05. 2018

숲,  죽음과 탄생이 순환하는 곳

박형근

박형근 작가의 작업에서 풍기는 독특한 색감은 몽환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분명 산을 걷다 마주하는 일상적인 풍경 같은데, 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숲의 색은 강렬하다 못해 생경하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숲은 몽환을 넘어 금단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독한 낯섦 혹은 신묘한 영험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고요한 숲에 잔잔히 들어오는 빛, 푸르스름함과 상충되는 색을 가진 오브제들의 조화에선 무엇인가 탄생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Tenseless, Decay, C print, 150x190cm, 2015


<Tenseless> 시리즈에서 박형근이 숲과 함께 등장시킨 오브제들을 살펴보면 말라비틀어진 식물, 썩은 열매, 불타버린 나무, 떨어진 꽃잎과 체리, 얼어붙은 나비, 동물 뼈 등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누적되어 변성된 것들, 죽지도 살지도 못한 것들, 일시적인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 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날 것들이다. 오브제들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환원을 앞두고 마지막 자신의 삶을 태우기라도 하듯 열정의 색을 발현하고 있다. 그렇게 숲은 죽음의 공간이요 동시에 새로운 탄생을 암시하는 공간인 셈이다. 

색감이 화려하다 해서 박형근의 작업이 컴퓨터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개입과 약간의 조작은 있을지라도 분명 작업은 실제 존재하는 숲에서 진행됐다. 물리적인 개입이라 하면 숲 안에 낯선 피사체를 놓는다거나 연못에 물감을 뿌리는 행위 따위의 것이라 할 수 있고, 약간의 조작이라 하면 포토샵에서 채도와 커브 값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다.


Untitled-1, Red hole, C print, 100x75cm, 2004
Untitled-2, Green pond, C print, 125x100cm, 2004


<Tenseless>가 숲에서 이루어지는 자연 유기체의 순환을 이야기한다면, <Forbidden Forest> 시리즈의 숲은 영적인 것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둡고 고요한 공간에 내리쬐는 빛은 어떤 대상이 떠나기 직전의 모습을 그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에서 그 대상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작가 노트에 의하면 이 작업의 숲은 마치 이승을 떠나기 전의 영혼들을 만나는 장소라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Forbidden Forest>를 처음 작업할 때는 카메라를 세우지도 못했다. 숲이 거부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숲은 샤머니즘 성향이 짙은 곳이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신을 만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으며, 제주 4·3 사건 때는 학살이 자행된 터이기도 했다. 영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촬영 전에 숲을 달래는 시간을 가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혼들과의 화해를 시도했던 것이다. 쓰레기도 줍고, 숲에 잠시 누워도 있었다. 이런 시간을 갖고 난 뒤에야 숲은 그의 작업을 허락했다. 


Forbidden forest-8, C print, 150x190cm, 2011


최근 박형근의 작업 스펙트럼은 서서히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 연작들이 자연의 발생, 순환 등을 다뤘다면, 근래 선보인 작업들은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예정되어 있는 전시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집대성되어 있는 간척지의 생태 환경을 그만의 시선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보여준 그만의 독특한 시선과 색감이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담아낼지 자못 궁금하다. [2015.11]




박형근 영국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이미지&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8년 갤러리 잔다리에서 열린 ‘Imaginary Journey' 개인전을 포함해 1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대구사진비엔날레(2010, 2012), 산타바바라미술관(2010) 등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110여 회 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휴스턴 현대미술관, 캐브랑리미술관, 금호미술관, 박건희문화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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