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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Apr 05. 2018

시선 너머의 풍경

김강희

<Street Errands> ⓒ KangHee Kim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첫인상은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걷다가 마주하는 풍경들처럼 익숙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다. 배경이 해외라는 것은 알겠는데, 프레임을 구성하는 몇 개의 조각들이 마치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환상 세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작업을 찬찬히 뜯어보기로 한다. 아뿔싸! 작가의 신묘한 리터칭 실력에 깜빡 속았다. 현실과 현실을 조합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사진과 사진이 만났지만 그림처럼 보이도록 둔갑술을 쓴 것 같다. 또, 어떤 작업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전반적으로 작업이 사진보다 디지털 페인팅에 더 가까워 보인다.

김강희의 작업은 보통 두 개 이상의 레이어가 겹쳐져 있다. 그렇다고 합성을 전제로 셔터를 누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번의 촬영이 그대로 결과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재밌는 시각적 요소가 내재된 장면들이다. 이들은 신경 쓰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결코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파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이 똑같아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 안에서 개성을 뽐내는 것들, 아름답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것들, 그리고 완벽해 보이는 도시 풍경에서 발견되는 옥에 티 같은 존재들, 연출한 것처럼 보이는 일몰 때의 빛 내림 등이 그 예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신선한 자극을 떠올리게 하는 김강희의 작업은 그녀가 처한 상황에서 시작됐다. 처음 미국으로 유학 간 시점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비자 문제로 인해 다른 국가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좌절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긍정적이다. 비자 문제 덕분에 미국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모든 것이 바람대로 이뤄지진 않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도 말한다.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마음이 초현실적인 작업으로 치환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작업 톤이 대체적으로 밝은 것도 이러한 마음이 반영돼서가 아닐까 싶다.


<Street Errands> ⓒ KangHee Kim


여기보다 어딘가에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10년째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가 풀리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도 김강희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였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녀의 최대 관심사인 익숙한 듯, 그러면서 동시에 생경한 풍경을 좇았다. 

늘 그러한 장면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기적 같은 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그 기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길에서 만난 것들을 사진으로 찍고, 다시 이들을 조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꿈속에서나 보던 창문 너머 유토피아를 그려낸 것이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Street Errands> 시리즈다. <Mirror> 시리즈 역시 이와 유사하다. 화장실 거울에 비춰진, 그녀 시야 범위를 넘어선 광경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업이다. 평소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조금 더 색다른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거울과 카메라의 미세한 각도에 따라 비춰지는 장면이 달라지는 게 인상적이다. 

감각적인 프레이밍, 사진 곳곳에 숨어있는 회화적 요소들, 초현실적인 분위기 외에 김강희의 작업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안정화되어 가고 있는 사진의 결이다. 작품 간에 편차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피사체들을 모아 새로이 조합하는 방식은 그대로인데, <Street Errands> 시리즈 초기 사진들과 최근 사진들을 비교해보면 완성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기술적으로 성장해서일 수도 있고, 기대했던 상황이 점차 현실로 다가와서일 수도 있겠다. 그녀가 비자 문제가 곧 해결될 것 같다는 희망 섞인 목소리를 전해온 것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일상 속 경험을 모티프로 하는 김강희의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훗날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의 모습이 사진 속 조각들로 등장한다면, 이는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뜻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도 그녀의 세상을 만나볼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본다. [2017.11]




김강희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길에서 만난 익숙한 듯,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운 풍경을 좇는 작업을 하고 있다. <Dazzled>(Rachel Come, 2017) 포함 세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Adidas Originals, New York Times 등과 상업 사진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kanghe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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