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새로고침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니 May 07. 2018

동해안 7번 국도를 서성이며

김전기


묘한 분위기의 경계

익숙한 듯 낯선 장면을 포착한 김전기의 작업이다. 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질곡의 역사를 가진 우리를 위로하기는커녕, 되레 모질었던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다그치는 것은 아니다. 잔잔하고 은유적이다. 간혹, ‘유머 1번지’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도 있다. 작업을 보면 금세 눈치채겠지만, 김전기의 시선이 머문 곳은 ‘자연과 일상의 경계 지점’,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분단 상황이 야기한 군사적 긴장지대와 민간인의 삶이 교차·충돌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사진 속에 주로 담겨있는 것들은 ‘지난 60년 동안 중단되었던 전쟁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철책선과 군 시설물’이다. 이들은 ‘분단의 상징물이자 여전히 유효한 전쟁의 실질적 대치상황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듣기만 해도 무거운 주제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전기는 이 주제들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의도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분단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키겠다는 목적도 보인다. 이에 대해 김전기는 “간접적 경계지역으로 보이는 동해안의 철책선을 따라 경계와 삶의 터가 맞물려있는 공간에서 새로이 변형되어가는 경계의 모습과, 모순된 현실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시간의 흔적들을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작업 속에서 감지되는 언캐니(Uncanny, 묘한)한 분위기는 그의 작업이 ‘분단’을 다룬 기존 작업들과 그 궤를 달리하기에 배가 된다. 기존 작업들 대부분이 분단의 편린들을 무미건조하게 다뤘다면, 김전기는 여러 개의 개별 섹션을 통해 분단을 다룬다. 교차와 충돌의 공간들을 획일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사방에 산재해 있는 전쟁의 흔적들을 무심하게 기록하고, 기이한 피사체를 타이트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또한, 같은 장소지만 앵글을 달리해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과 지극히 초현실적인 풍경을 동시에 만들기도 한다. 지루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 다양한 생각이 가능하다. 이 공간이 지정학적 경계인지, 그린벨트와 재개발 지역의 경계인지, 아니면 현실과 이상의 경계인지 혼동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삼척까지 동해안 7번국도 근방은 분단의 묘한 분위기를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접근이 어렵고 분위기도 어두운 서해안과 파주, 임진각과는 달리 동해안은 경계, 모순, 현실 너머, 흔적 등의 개념들이 중첩되는 군사지역이다. 김전기는 오랜 시간 해안가에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익숙하게 여겨지던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특히 군사적인 부분에서 그랬다. 아무런 예고 없이 야간 사격을 하는 것, 군사훈련 때문에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 것, 민간인들은 해안가 출입이 금지됐는데 정작 군인 가족들은 해안가 목 좋은 곳에서 휴양을 즐기는 것 등이 이해되지 않았다. 국가로부터 받는 이익보다, 국가로부터 파생된 불합리함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안보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상업적인 시설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철책선 근처 공간을 결혼식장과 어린이집으로 사용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그 어떤 긴장감도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분단지역의 최전선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자연스레 ‘분단과 경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여전히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안보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했다. 작가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업의 화살은 두 군데로 향한다. 먼저, 국가를 향해서는 국가라는 권력집단이 개인의 삶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항변의 성격이 짙다. 반면, 국민을 향해서는 우리의 현실이 아직은 불편하다고 말한다. 분단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성의 자각을 촉구하는 양상이다. 분명 분단은 슬픈 역사이자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금의 분단 상황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정치공학’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전기의 작업을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견제 장치’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2018.02]




김전기 동해안 지역의 7번 국도와 맞닿아 있는 군사 지대를 중심으로 일상의 공간과 경계선 안과 밖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2013년 <동강 국제사진제> ‘베스트 포트폴리오’에 선정됐으며, 2014년 <SKOPF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다섯 번의 개인전과 열두 번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 너머의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