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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Mar 31. 2018

기.억.수.집.가

양승욱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 버려진 것의 의미

양승욱에겐 수집벽이 있다. 주로 장난감을 모은다. 수집은 어렸을 때 먼저 하늘로 보낸 형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다. 형이 떠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형과의 추억이 배어 있던 장난감들이 하루아침에 집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건이 어린 양승욱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라진 것과 같은 것을 찾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아마도 ‘모으는 것이 끝난다면 형에 대한 추억 역시 사라질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Fast Toys> 시리즈는 이렇게 장난감을 모으는 데서 시작됐다. 특이한 점은 작업에 사용된 장난감들 중에 새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필요가 없어진 것들의 ‘쓸모 있음’이 양승욱에 의해 다시 증명된 셈이다. 작가는 장난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을 수집한다.<Fast Toys> 속 반듯하게 정렬된 수많은 장난감들을 보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압감도 느껴진다. 양승욱은 이 작업을 통해 세상에 버려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버린 것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면 하는 것이 그의 작업의도다. 

장난감을 모으다 보니 가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생긴다. 예전에 해외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장난감을 대량으로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세관에서 통과가 안 된다는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세관에서 양승욱을 판매업자로 의심한 탓이다. 작업계획서를 세 번이나 보내고 나서야 장난감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장난감 몇 개를 해외에 사는 친구에게 보냈는데, 친구가 놀라서 전화를 했단다. 상자에서 해진 인형들이 계속 나오니까 인형 뱃속에 마약이 있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었다. 졸지에 장난감과 마약 밀거래상이 됐던 순간이었다. 또 작년과 올해는 예상치 못한 국가적 재난상황 때문에 힘이 들었다. 장난감을 사려면 중고시장에 가야 하는데, 계속 문을 닫았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Fast Toys>는 작년에 끝났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실제로 그는 점점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장난감들을 보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한 번은 버리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수 천 개 중에서 하나를 버리는 것도 아까워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것. 점점 작업이 삶을 옭아매는 굴레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조만간 이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작가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작업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남보다 앞서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저 배만 채우기 위한 패스트푸드(Fast Food)처럼 우리의 기억도 빠르게 소비되는 패스트메모리(Fast Memory)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키치한 시선

양승욱은 독특한 시선을 가진 작가다. 각 물건들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역사가 있는데, 작가는 언제부턴가 이 물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본인의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Unfolding Objects>와 <Vice Vera>는 어느 한 사물을 통해 연상되는 다른 이미지나 기억들을 병치시킨 것이 특징이다. <Fast Toys>와는 다른 형식의 작업이다. 

<Unfolding Objects>는 종이접기와 사진을 조합한 작업이다. 어렸을 적 놀이와 꿈을 표현한 것이 종이접기라면, 촬영된 사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변형된 동경의 대상을 의미한다. 이상향과 현실간의 불일치 혹은 둘 사이의 접점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Vice Versa>는 ‘데자뷰’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다. 새로운 피사체나 상황을 접할 때면 항상 과거의 어떤 것들과 연관시켜 인식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 있는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을 표현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키치하면서도 매력적인 그의 시선은 우리가 순식간에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더 나아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지금껏 얼마나 주변의 것들을 소홀하게 대해왔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양승욱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장난감과 기억을 수집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만남 뒤 양승욱은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수집거리를 찾으러 간다.”는 대답만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2015.10]




양승욱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재학 중이다. 2014년 대전 Gallery NUDA에서 첫 번째 개인전 ‘Rendezvous'를 개최했다. 단체전은 2010년 ‘선심초심’을 시작으로 2015년 ‘디지털 아르텍스모다 2015’까지 총 4회 참여했다. yangseungw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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