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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07. 2019

전자현미경으로 발견한 풍경

지호준


‘본다’라는 행위와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그림이 묘사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았다. 화가의 그림이 곧 사실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테오도르 제리코의 ‘엡솜의 더비 경마’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말이 달리기 위해선 앞다리와 뒷다리가 무조건 앞뒤로 쭉 펼쳐져야만 하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사진을 본 뒤 산산 조각났다. 달리는 말의 다리는 늘 교차되고 있음이 사진을 통해 발견된 까닭이다. 과학의 등장으로 인해 ‘본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편견과 습관은 깨지고 말았다. 이와 함께 미술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을 묘사하기 시작했고, 과학의 눈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나갔다. 이를 계기로 과학과 예술의 만남도 빈번해졌다.



나노의 영역까지 침범하라

지호준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예술 작업을 하는 사진가다. 그는 나노의 영역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을 작업에 활용한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어떤 풍경을 이미지로 추출한 다음, 이를 특정 공간에 투영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작업이 바로 <Nanography> 시리즈다. 이 시리즈를 처음 마주하게 되면 굉장히 혼란스럽다. 지금 나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업에 대한 힌트가 없다면,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작업의 비밀을 속 시원하게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Nanography>는 지호준이 카이스트 재학 중 동료의 모니터에 떠 있는 흑백사진 한 장을 우연히 보면서 시작된 작업이다. 나무를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 그 사진을 어디에서 촬영했냐고 동료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말은 ‘화학물질을 찍었다’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나무처럼 보였던 이미지의 소재는 화학물질인 폴리디메틸실록산(PDMS). 놀랍게도 자연물이 아니었다. PDMS를 구성하는 원소를 본 작가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들을 구성하는 요소가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원소인 탄소-수소-산소-규소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성에 따라서 물, 나무, 유리 같은 일상의 물질이 되기도 하고, 흑백사진에서 본 것처럼 나무 형상을 띠기도 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에, 인간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두워선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작가는 충격에 빠졌다. ‘본다’는 행위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의하는 모든 것이 가변성을 가진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Nanography>의 첫걸음은 전지현미경을 이용해 어떤 풍경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한지, 동전, 몰약과 유향처럼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나노플라워, 나노크리스털 같은 자연의 형상을 가진 화학물질 모두 소재가 됐다. 이후에는 나노 이미지 속 미시공간과 유사한 현실의 공간을 찾았다. 예를 들어, 한지에서 산의 형상을 발견했다면 현실 공간을 산으로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서 빔프로젝터를 통해 나노이미지를 산이나 나무 같은 현실 공간에 투영한 뒤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호준의 작업에서 오는 첫인상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나노이미지와 현실 공간의 중첩에서 오는 시각적 효과가 꽤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초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작업은 분명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끼리의 만남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어떤 형상에 대해 한 치의 의심 없이 ‘나무’라 불러왔는데,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에서 ‘나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의 어떤 존재가 갑자기 등장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Nanography>는 어떤 대상에 대한 형상적인 접근과 본질적인 접근을 동시에 시도한 작업이다. 인간의 눈이 가진 한계를 통렬하게 보여줌으로써 ‘본다’는 행위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정해놓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고착화된 그리고 일상화된 우리 시야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았던가. 타성에 젖은 시각은 오로지 한 치 앞만을 보게 한다. 이를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보는 것의 확장, 더 나아가 생각의 확장은 필수다. 이것 또한 작가가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2017.01]




지호준 과학적 접근을 통한 보는 행위로 세상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는 사진가다. 2014년 신한은행(뉴욕), 2011년 진화랑 등 8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상명대학교 사진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신작 <Nanography #2>는 1월 25일까지 진화랑에서 볼 수 있다. www.jihoj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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