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새로고침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니 Jul 07. 2019

슬픔보다 더 슬픈 집

조현택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처음 조현택의 <Photography> 시리즈를 보고 아벨라르도 모렐(Abelardo Morell)의 <Camera Obscura> 시리즈가 떠올랐다. 창밖의 이미지가 반전되어 방 내부에 맺혀있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집을 촬영한 것인데 각각의 사진에서 초현실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는 점 역시 흡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모렐은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투영시켰다는 것이고, 조현택은 누군가의 발길이 끊어진 집에 재개발 지역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사진의 형식적인 면 이외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모렐의 작업은 1991년부터 시작된 반면 조현택의 시리즈는 2015년에 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저작권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진계에서 조현택은 왜 오해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다

작품의 시작은 어머니의 부재 때문이었다. <Photography> 작업 중 첫 번째 집을 촬영하던 날 조현택은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집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그의 가족이 처음으로 장만한 집에서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을 떠나 도망치듯 낯선 도시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의 부재가 느껴지는 집이 그에게 힘겨웠고, 작업실을 집 삼아 생활하기도 했다. 

놓고 있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슬픔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이때부터 강박적으로 빈 집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Photography> 시리즈를 보면 조현택은 어떻게 해서든 사라진 것의 흔적을 찾아서 남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상실과 부재의 시공간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회복과 존재의 순간을 만들고 이를 사진으로 박제하는 듯한 느낌이다.

조현택의 촬영 반경은 그가 거주하는 나주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빛그린산업단지’다. 재개발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철거 선고를 받은 빈 집들이 나타났다. 작가는 사전에 미리 빈 집을 점찍어 놓는다. 그런 다음 날씨가 좋은 날 촬영 장비를 들고 다시 방문한다. 먼저 집에 들어가면 빛이 들어오는 모든 곳을 막는다. 칠흑 같이 어두운 실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빛을 막을 때는 보통 검은 천을 사용한다. 그 다음 천 위에 하나의 구멍을 뚫어 렌즈를 장착한다. 그러면 밖의 풍경이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처럼 상하좌우가 반전된 채 집 벽면에 이미지로 맺힌다.  

대부분의 작가가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서만 개입한다면, 조현택은 벽면과 카메라 사이에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 왜 이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풍경에 초점을 맞춘 기존 작업들이 카메라 옵스큐라에 ‘도구’라는 의미만 부여한 반면, 그의 작업은 사진을 통해 무엇인가를 극복한다는 ‘목적’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작업이 아벨라르도 모렐의 <Camera Obscura>시리즈 등 여타 작품들과 방향이 다르고, 촬영이 30회가 넘어서면서부터 ‘아류와 표절’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빈집, 그리고 영정사진

순탄치만은 않았던 과정이었다. 집 안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죽은 쥐의 사체는 물론 누군가의 배설물도 있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조현택의 작업은 마치 한 장의 영정사진을 보는 것 같다. 영정사진 속 인물이 마지막을 준비하며 미소를 머금는 것처럼 작업 속 철거를 앞둔 빈 집의 모습도 밝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촬영 후 빈 집들이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얼마 전 작업을 공개할 때는 사라진 집의 시간을 반추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 집에 놓고 간 액자, 망치, 구리 전선 등을 사진과 함께 전시하는 형식이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마지막으로 대상을 편안히 보내는 의식처럼 말이다.

<Photography> 시리즈를 보다가 문득 그가 일종의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기분이 들었다. 무례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빈 집 촬영을 통해 슬픔이 무뎌진다면 언젠가는 지금 그가 갇혀있는 강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날이 조현택이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편안히 보내는 날이 되지 않을까. 동시에 그날은 <Photography> 시리즈의 마지막 컷을 촬영하는 날이 될 지도 모르겠다. [2015.11]




조현택 동신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광주 예술의 거리 야외전시장에서 첫 번째 개인전 ‘내가 기억하는 것들’을 시작으로 총 3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단체전은 2007년 ‘또 다른 생각’을 시작으로 2012년 광주비엔날레까지 총 6번 참여했다. 수상경력으로는 스페이스22 ‘포트폴리오 Open Call 2016' 선정 등이 있다. 작업으로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젊은이의 양지> 시리즈 등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