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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07. 2019

비트로 해체된 풍경

장석준

평평한 도시(Flat-City)의 촬영 파편 모음. 다양한 장소의 표면에서 시작된 영상들이 수집되어 하나의 화면으로 나열되어 있다.


디지털 평면화의 시작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느끼며 도시의 파편들을 채집해 온 장석준. 2004년부터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닌 작가는 작업을 위해 상점과 건물의 푸른색 셔터와 알록달록한 셔터, 그리고 1970년대식 방석집의 외관 등을 채집했다. 이들은 곧 소멸할 것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들이었다. 채집한 것들은 몽타주 방식을 통해 어떤 것을 형상화 한다거나 독특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됐다. ‘디지털 평면화’로 명명된 이 작업은 ‘우리 눈에 익숙해져서 하나의 기호처럼 읽히는 주변 사물, 즉 우리가 사는 도시 풍경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들을 평평한 낱장의 이미지들로 채집한 것이다. 이런 이미지들의 집합은 새로운 도시의 풍경을 구성(전시서문)’한 것이었다. 이는 작가의 초창기 작업인 ‘하늘’(2006)과 ‘무지개’(2006), ‘핑크가 모자라’(2008)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해오던 장석준의 작업은 최근 영상에 기반을 두는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회문화적인 것으로 해석됐던 작업의 성격도 개인의 시각과 인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작업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얼마 전 갤러리 잔다리에서 열렸던 <Flat City(평평한 도시)>다. 전시 작품들은 ‘도시 구조의 질서와 현상을 온/오프라인 사이의 디지털화면 구조로 재해석하여 비트(Bit, 컴퓨터 정보 전달의 최소단위)로 해체된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관객들로 하여금 ‘현대 도시의 화면과 실제 사이의 삶에서 소멸되고 삭제되는 이면의 풍경들을 각각의 역동적인 비트 스케이프(Bit-scape, 이미지 파편으로 만들어진 풍경)로 경험’하도록 해주었다.


평평한 도시(Flat-City), Digital color video playback program system, Dimension variable, 2015


평평한 도시, 그리고 드론

‘Flat City’는 온라인 지도 보기 서비스(예_구글 어스, 네이버 위성)를 사용하여 풍경을 감상하는 태도를 드론 촬영을 통해 물리적으로 재현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온라인 지도상에서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여러 지점들을 설정한 뒤 최대한 줌인을 하고, 각각의 지점에서 다시 마우스 스크롤링을 통해 줌아웃을 하면 어느 한부분에서는 꼭 교차된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먼저 온라인 지도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찾는다. 주로 주거지와 공장, 농촌 등이 골고루 있는 지역(이천, 부천, 동인천)을 선정한다. 이곳은 들판인지, 공장지대인지, 농촌인지 다소 애매모호하지만 구역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미리 온라인 지도에서 조사했던 장소들을 찾아가 촬영 준비를 한다. 촬영 시작점은 건물 옥상 바닥, 학교 운동장, 벽돌, 풀 등 다양하다(앞 페이지 촬영 파편 모음 참고). 비행을 시작한 드론이 최고점에 도달했다가 다시 시작점에 도달할 때까지의 모습을 원테이크로 촬영한다. 온라인 지도 위성서비스에서 마우스 스크롤링을 통해 줌인/아웃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Flat City’는 각 지점들에서 촬영한 영상들 중 두 개를 골라 나란히 배치한 작업이다. 두 개의 영상은 각각 다른 지점에서 동시에 시작된다. 이 지점은 전체 영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것(비트)이라 할 수 있다. 온라인 지도를 확대하면 픽셀의 형태가 보이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후 계속해서 고도가 상승하는 영상은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정도의 높이에 다다랐을 때 하나의 비밀을 알려준다. 두 화면의 시작점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두 개의 영상에서 공통된 부분(논, 학교 등)을 발견하면서 알게 된다.


촬영 장소는 주거지, 빈 공터, 공장 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일상적인 개발 도시를 중심으로 선택했다. 웹 지도에서 임의로 좌표 주소를 정한 다음 실제 위치로 이동한다.


우리가 무심했던 풍경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것들이 모여서 우리 주변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눈으로는 인지하지 못한다. 작품을 보다 보면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를 경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쉽게 마주하는 것들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또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분명 무엇인가를 지각하고 기억한다는 체험은 입체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무뎌지고 있는 이 사실을 인지하게 하는 수단이 평면의 디지털이라는 것이아이러니하다. 장석준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다. 가까이 가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곳을 디지털의 가장 작은 범위인 비트가 담아내고, 또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3D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의 것들을 2D가 대신 말하고 있다니, 우리는 그동안 우리 주변에 얼마나 무심했던 것일까. [2015.11]




장석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동대학원 전문사를 졸업했다. Artspace Hue 개인전을 시작으로 4회의 개인전과 서울시립미술관 SeMA 2008에 참여하는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2015년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디어 아티스트 성장 지원 프로젝트 VH AWARD 제1회 최종 합격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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