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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n 24. 2020

신과 함께

오제성

실제로 판매되고 있는 각종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상(神像)에 주목한 오제성의 작업이다. 긴긴 이 밤, 화려한 불빛 아래 신들이 모인 이유가 궁금하다.


신들의 시간, 2020, Ink jet print, 61x41cm


둠칫둠칫 두둠칫! “비트 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작업이다. 사이키델릭한 분위기 아래 이리저리 교차하는 쇼트에 몸을 맡기니, 마치 클러빙을 위해 헤쳐 모인 방구석 신들과 이 밤을 불태우는 것만 같다. <신과 신들의 고향>은 본디 ‘경쾌하고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영상 작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서 파생된 사진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일종의 ‘스핀오프’로, 영상 촬영 시 구축한 세트와 조명을 이용, 미처 영상에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필름 카메라를 구하기 위해 풍물시장 일대를 돌아다닌 것이 작업의 시초다. 구매한 카메라로 풍물시장을 기록하던 중 오제성의 시선을 강탈한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매대에 진열된 신상(神像)이다. 전 세계에서 날고 긴다는 신들인데, 이곳에선 크기와 재질별로 분류되고, 이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광경이 머릿속에 감치고 잊히질 않았다. 어딘가에선 성스러울 조각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상품에 불과하는 것을 깨달은 오제성은 그때부터 신들의 고향이 어디이고, 앞으로 어디로 흘러 들어가게 될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신들의 시간, 2020, Ink jet print, 61x41cm
(왼쪽) 신들의 시간, 2020, Ink jet print, 61x41cm (오른쪽) 가지꽃, 2020, Ink jet print, 28x35cm                   


한국의 신(神)들은 서로 싸우거나 경쟁하지 않는다. 한데 어울려 각자 소임을 하는 모양새다. 다양한 신이 모여있는 <신중탱화>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북한군, 성모님, 예수님이 등장하는 ‘무속도’도 있다. 이러한 ‘화합과 연대’는 우리나라 신앙의 특징인 기복(祈福)에서 기인한다. 개인의 복을 비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신과 신을 따르는 사람끼리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과 관련된 기도는 용왕에게, 죽음은 지장보살에게, 집은 성주신에게 빌면 된다. 한마디로 ‘분업화’다. 이는 <신과 신들의 고향>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신들이 응집된 장면에선 ‘신은 하나다. 누군가의 믿음, 장소성에 따라 대상과 형태만 바뀔 뿐이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굉장히 한국다운 풍경과 ‘경쾌하고 비장한 록 음악’의 조화는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것을 표현하기에 충분한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결코 이질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신의 고향 역시 고요한 밤인 듯하나 소란스러운 나의 마음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2020. 06]


** 오제성의 영상 작업 <신과 신들의 고향>은 youtu.be/UVdgCX3oyuE 에서 감상할 수 있다. **



오제성 자신 주변의 상황, 기억, 공간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서사가 있는 영상, 사진, 조각 등의 매체로 표현한다. 작품으로 구성하는 데 있어 문학, 미술, 설화, 영화 등의 요소를 응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 조악한 오브제와의 연출을 보여주거나, 엉뚱하고 과장된 음악을 삽입하여 작가만의 색채를 더한다. 

www.jeisungoh.com


신들의 시간, 2020, Ink jet print, 50x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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